우리나라에서 명의(名醫)되는 법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 전남대학교병원 정신과 소아청소년 정신건강클리닉
최 영


(아래의 글은 비판적인 관점에서 반어법을 사용한 다소 과격하고 거친 내용입니다. 일부 내용은 심하게 비판받을 소지가 많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만... 평소 제가 주위에서 들었던 이야기, 그리고 가끔씩 느끼던 점들을 그냥 써보고 싶은 마음에서 글을 남깁니다. 저는 결코 명의가 아니기 때문에 이 글을 쓴다고 보시면 틀림없습니다. 자신이 명의라고 생각하는 분, 그리고 명의에게 현재 치료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환자분들은 이글을 읽는 것이 해로울 수 있습니다. 읽는 것을 중단하시면 됩니다.)

# 명의(名醫)란....

서점에 가 보거나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명의란 단어를 제목에 포함시킨 책이나 사이트가 있습니다. 명의 요람 혹은 명의 사전식으로 각 분야의 유명하고 고명한 의사들에 대한 정보가 나열되어 있거나 우리 동네 명의 식으로 가까운 곳의 병원이나 의사를 소개해놓은 것들 입니다.

이 경우 유명한 의사를 명의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떤 특정 질병에 대한 탁월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분도 되겠지요. 혹은 특정 유명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가 명의와 동일시 되기도 합니다.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분들이 명의라고 보는 일반인도 있습니다.

명의... 그러면 혹자는 중국의 전설적인 명의 화타나 편작을 떠올리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 동의보감을 쓴 허준, 혹은 사상의학의 창시자 등을 예를 들기도 합니다. 대개 뛰어난 능력으로 다른 의사가 고치지 못하는 병을 단번에 해결해내는... 약간은 신비적인 인물들입니다. 영어로 의사를 지칭하는 닥터 (doctor)라는 단어는 주술사나 마법사를 뜻하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는 의학의 뿌리가 그쪽에 닿아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 단어는 요리사라는 뜻의 속어로 사용되기도 하며, 납을 한쪽에 채워서 부정한 방법으로 사용되는 주사위를 뜻하기도 합니다.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랍니다.

과연 어떤 의사가 명의인지... 저의 명의에 대한 정의는 이 글의 끝무렵에 있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한국에서 명의되는 방법? (이 부분은 글의 내용과 격을 맞추기 위해 존댓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1. "언론 플레이"를 잘한다.

논문의 연구결과가 나오면(심지어 결과가 안 나왔어도 상관없슴!), 일단 학술지에 투고하기 전에 기자에게 알린다. 그래서 신문지상이나 TV를 통해 자신의 연구결과를 화려하게 포장해서 일단 알려놓고 볼일이다. 그래서 환자가 전국에서 몰려들면 만사 OK! 연구 결과에 대한 전문가들의 비판은 언론에 실리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인내심을 발휘하면 그뿐이다.

방송에 출연하거나 신문에 투고를 하는 경우에는 자신을 화려하게 포장하는 것은 기본이다. 물론 내용은 제작에 관여하는 PD나 원고청탁 기자의 구미에 맞도록 양념을 잘 쳐주어야 한다. 내용이 학술적으로 공인받은 것이냐....는 추후 문제이다. 그리고 출연료나 원고료는 가능한 제작진과 같이 사용하는 지혜도 필수다. 물론 "준비된 출연자"라야 한다. 환자 진료시간이라도 언론의 요구가 있으면 진료일정을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출연하고 보는 배짱이 있어야 겠다.

2. 가능한 환자는 오래 기다리게 한다.

개원가에게는 해당되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겠지만... 종합병원에서는 써 먹을만 하다. 일주일에 진료하는 횟수를 가능한 줄여서 "모모 의사에게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몇달, 혹은 몇년을 기다려야 한다네...."라는 소문이 날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줄을 서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다. 유명한 음식점에서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에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대가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손님이 몇 사람 없는 음식점에 가서는 조금만 음식이 늦게 나오면 불평하는 것이 우리 인간 심리다. 과연 음식 맛의 차이는? 글세....

그래서 진료를 하더라도 가능한 늦게 시작해서 오래 기다리게 하고 바글바글한 대기실에서 그 의사에게 치료받아서 좋아진 무용담이 서로 오갈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어야 한다.

3. 낫기 어려운 환자는 보지 않는다.

"그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증세가 좋아지지 않았다..."라는 말이 한사람의 입에서라도 나오면 절대 안된다. 그런 소문은 명의의 천적이요 금기사항이다. 그러므로 처음 진료를 해보고 이 환자가 좋아질 것인지.... 누가 치료하더라도 효과가 적을 환자인지를... 재빨리 판단해내는 것이 명의의 기본 자질이다. 낫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환자는 어떤 이유를 붙여서라도 더 이상 진료를 해서는 안된다. 적절한 핑계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창조해내는 천재성이 필요하다.

4. 나만의 비법을 만들어 낸다.

학문적으로 공인된... 그래서 다른 의사들이 치료에 사용하고 있는 방법을 쓰는 것은 조자룡이 헌칼을 들고 있는 모양새다. 조자룡은 역시 번쩍이고 눈에 띄는 새로운 모양새의 칼을 들고 있어야 한다. 칼이 본래의 사용목적에 적당하고 효율적인가 하는 것은 둘째 문제다. 그 치료 방법의 효과가 공인된 것이냐를 고심한다면... 명의의 자질이 부족한 것이다. 혹시 환자에게 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 고뇌도 명의의 적이다. 그 방법으로 치료하면 꼭 낫을 것 같은 희망과 환상을 만들어내는... 마치 사이비 종교의 교주와 같은 신비스런 분위기는 필수다.

그래서 남들이 하지 않는 비상한 방법을 끊임없이 고안해 내고... 그런 창조가 어려우면 외국에 눈을 돌려서... 남들의 비법을 모방하면 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격언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비법을 1번 규칙과 적절하게 같이 사용하는 노고를 서슴치 말아야 된다.

또 다른 몇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지나치게 과격한 내용이므로 이 공개된 공간에서는 절제의 미덕을 발휘하기로 한다.

# 다시 명의란?

개인적으로 명의란 병에 대한 지식이 많은 의사라고 보지 않습니다. 지식이야 의과대학에서, 그리고 수련과정에서.... 보편적인 의사가 가진 평균적인 지식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물론 꾸준히 최신 지식을 흡수하는 진행형으로 공부하는 의사여야 합니다.

유명한 의사가 명의는 아닙니다. 언론 플레이에 쏟아부을 에너지를 환자 한명 한명에게 바치는 의사가 명의입니다. 잘 낫지 않을 환자인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서 끝까지 도와주는 의사여야 합니다.

환자와 한 약속을 잘 지키는 의사가 명의입니다. 그리고 자세한 설명... 환자의 병 외에도 고통받는 마음을 헤아리고 어루만져줄 수 있어야 합니다.

명의는 여러분의 멀리에 있지 않고 가까운 곳에 있답니다. 주위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후기: 이런 여러 관점에서 본다면 저는 역시 명의가 되려면 한참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 1999/1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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