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전남의대 정신과 / 전남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 정신건강클리닉
최 영

아래 글은 1999/ 7/ 16과 11/23 두 번에 걸쳐 www.DrChoi.pe.kr 정신건강토론방에 게시했던 것입니다.


2000년 중반에 의약분업이 시행된다고 합니다. 진료는 의사에게 받고 약은 약국에서 구입하는 방식입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 언론이나 일반인들이 밥그릇 싸움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는 밥그릇 싸움의 수준을 넘어서 국민 전체의 건강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사안이랍니다.

논란이 많습니다만 제 개인 의견은 국민 전체의 건강에 좋은 방향이라는 대 원칙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의약 분업에 대한 다음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철저한 약물 분류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사실 간단한 진통제, 해열제, 파스 정도는 보다 쉽게 일반인들이 구입할 수 있어야 겠습니다. 그리고 남용의 우려가 있거나 부작용이 염려되는 약물들은 의사의 처방에 의해서만 가능해야 합니다. 물론 의사의 처방 자체도 어느 정도는 통제되어야 겠지요. 항생제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인한 폐해는 널리 알려져 있으며, 습관성 의약품, 호르몬제 등을 너무 쉽게, 그리고 무분별하게 구입할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2. 병의원이나 약국이 적은 도서 지역의 상황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꼭 약물치료가 필요한데 시간과 거리의 문제로 치료를 못하게 되거나 해당 주민들에게 불편을 초래하는 것은 결코 안됩니다.

3. 환자 개개인이 지출하는 의료 비용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의약분업이 이루어져야 됩니다. 가능한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의료를 어떻게 국민 개개인에서 제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실제 현재에도 의료보험에서 건당 진료비라든가 청구액에 대한 삭감을 하는 방식으로 의료비에 대한 부분적인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의 방식 자체에는 저도 불만이 있습니니다만... 모쪼록 적절한 비용으로 최대의 치료효과가 나는 방식이 모색되어야 합니다.

4. 사실 정신과 영역에서 의약분업 문제는 상당한 걱정이 앞섭니다. 사실 의사 환자의 고유한 관계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많다고 봅니다. 약물 투여 자체에 개입되어 있는 심리적 효과가 손상받을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병에 대한 자각이 없는 많은 환자들이 진료를 받았지만 약국에 가는 것을 꺼려서 적절한 투약이 되지 않는다면 제도가 환자가 건강해질 기회를 빼앗아 버리는 것이므로 절대 이런 일은 없어야 합니다.

5. 또 염려되는 것은 환자 개개인의 비밀 문제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의 질병이 남에게 드러나는 것을 꺼립니다. 의약분업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정보노출에 대한 불안 때문에 적절한 치료의 시기를 놓치는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은 인권과도 연관된 심각한 문제입니다.

6. 처방이란 기술적인 측면도 있지만 예술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처방은 의사 자신의 지식이외에 고유한 경험과 직관, 그리고 환자 개개인의 상태에 대한 자세한 이해를 바탕으로 발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본다면 일종의 copyright 즉 저작권이 처방을 발행한 의사에게 있지요. 물론 처방에 대한 법적 책임도 있고요. 그런데 의약 분업이 이루어지는 경우 처방을 받아서 그 질병치료에 대해 문외한인 가까운 병원이나 약국에서 처방이 복제(copy)된다면 이런 지적 소유권의 문제를 침해할 소지가 많다고 봅니다. 사실 처방이란 개개인에서 진료 당시의 상태에 따라 변경 되어야 합니다. 약물 구입 당시의 건강이 고려되지 않고 환자의 요구가 있다고 해서 과거의 처방이 복제되어, 결과적으로는 환자에게 피해가 초래되는 일은 있어서는 결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의약분업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해본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앞의 내용에 대한 확신은 없습니다만.... 현재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보다 많은 분들의 의견을 듣고 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이 글을 게시합니다.

모든 논의는 의사나 약사, 혹은 의료보험 관계자나 공무원 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을 위한 방향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1999/ 7/ 16


의약 분업에 대한 논란이 진행 중입니다. 아마 11월 30일에는 우리나라 건국이래 최초로 의사들의 집단 시위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말 그대로 의약분업이란 진료와 처방은 의사가..... 그 처방에 따라 약을 포장하고 환자에게 전달하는 것( 이것을 조제라고 합니다.)은 약사가... 아마 과거에 신문의 약 광고의 한 부분에서 많이 보아온 말일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우려되는 것은 "또 밥그릇 싸움?", "아, 집단이기주의!" 라는 일부 국민들의 인식입니다. 의사가 이글을 쓰기 때문에 당연히 의사 편을 드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Back 버튼이나 종료 버튼을 클릭하는 분도 있겠지만... 한 번 정도는 같이 생각해볼 문제랍니다.

1. 찬성과 반대

저를 포함한 많은 의사들이 의약분업에 찬성을 합니다. 아니 그 원칙에 동의합니다. 의약 분업을 통해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집단은 의사도, 약사도 아닌 환자를 포함한 국민 전체 입니다. 과다한 약물 투여로 인해서 항생제에 내성이 생기고... 외국에 비해 심할 정도로 불필요한 약들이 처방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잘못된 현실이지요. 의약분업은 이런 잘못에서 벗어나기 위한 훌륭한 안전장치 랍니다. 하지만, 많은 의사들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의약분업 방식에는 반대를 합니다. 즉, 총론에는 찬성, 각론에는 반대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지요.

2.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 중에서...

1) 임의 조제의 가능성

현재 임의 조제라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약사가 임의로 약을 처방할 수 있다는 단순한 뜻입니다. 약사가 처방을 하는 것이 왜 이상하지? 라고 질문할 분도 있겠군요. 약국에 가서 무슨 무슨 증상이 있다... 그러면 현재까지 관행적으로 약사가 처방을 해서 몇 가지 약을 싸주고.. 혹은 특정 약을 추천해서 구입하는 것... 지금까지의 현실이지만.... 진료 없이 처방과 투약이 이루어지는 잘못된 관행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특정 약을 약국에서 구입합니다. 그러면 두군데 중 한 곳은 다른 약을 추천하거나... 간장약, 영양제, 소화제와 같이 먹을 것을 권하고, 자신이 조제한 약을 먹으라고 하거나... 심지어는 한약을 먹으라는 권유를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교과서에 따르면 그 약물은 전혀 다른 약과 같이 복용할 이유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저 자신이 의사라는 것을 밝혀야 그 권유가 끝났던 경험도 있습니다.

의사도 마찬 가지랍니다. 대부분 처방되는 약은 총천연색으로 한웅큼이고 병원에 갈 때 마다 주사 한대씩은 꼭 정성(?)스럽게 놔주는 곳이 태반입니다. 이것도 잘못된 것이지요. 현재 논의되는 방식으로 의약 분업이 된다면 적어도 이런 의사들의 과다 처방은 막아질 것으로 봅니다.

의약 분업의 근본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런 임의 조제는 철저하게 제도적으로 막아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의약 분업에서는 이 임의 조제에 대한 근원적인 대책이 없기 때문에 의사들이 우려하는 것이지요. 결국 이 부분에 대한 대책이 없다면 무분별한 투약에 의한 손해는 국민이 고스란히 입어야 합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2) 의약품 분류

현재 논의되는 제도에서는 약을 전문의약품(진료 후 의사의 처방에 의해서만 판매할 수 있는 것)과 일반의약품(처방 없이 약사가 판매할 수 있는 것)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심각하게 우려할 만 합니다.

A라는 성분의 약품이 있습니다. 100mg의 함량을 가진 것은 전문의약품... 50mg의 함량을 가진 것은 일반의약품... 논리적입니까? 100mg을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했다면 그 약이 가지는 부작용이라던가...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투약해야 되는 이유가 있는 법인데.... 50mg 두알은 부작용이 없다는 뜻... 그래서 진료없이 투약해도 된다... 그런 논리군요. 이런 분류라면 말 그대로 의약분업의 뿌리를 흔드는 심각한 방식입니다.

3. 지켜져야할 원칙들

환자를 위한다면.. 국민의 건강을 위한다면... 완전한 의약분업이 되어야 합니다. 의사 집단을 위해서, 약사 집단을 위해서 이익이 되니까.. 혹은 손해가 되니까... 찬성하고 반대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타협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건강은 타협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일부 시민 단체에서 중재안을 내왔고 나름대로 이 의약분업 문제에 대한 주도를 하고 있습니다만.... 그 단체는 전문단체는 아닙니다. 총론은 이끌 수 있지만 각론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고 합리적인 주장인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받아들여 주는 태도..... 원칙은 지킵시다.

4. 길거리로... 길거리로...

우리는 데모나 시위에 익숙합니다. 너무나 익숙해서 이젠 지겹기도 합니다. 현재의 상황은 의사들이 길거리로 나갈 분위기로 몰려져 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말과 논리로 된 주장이 먹혀들지 않을 때..... 우리는 시위를 하고 힘을 과시하고 떠들어댑니다. 매우 걱정 스럽습니다.

저도 이런 집회의 참석 문제로 목하 심각한 생각을 진행 중에 있답니다.

5. 저의 이야기

얼마 전 진료하던 환자 한분이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약이라고 탔는데... 하루에 한알이 뭡니까?" 너무 허전하다는 군요. 바쁜 와중에 설명에 한참을 공들인 후 되돌아서는 그 분의 모습을 보며.... "나도 약 장사 식으로 했으면 더 편했을 껄.... "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의사건 약사건.... 그 분야의 전문가들을 약장사로 만들고... 조장하는... 제도는 결코 안 됩니다. "약 권하는 사회"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199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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