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그리고 난센스 - 자본주의? 사회주의?

최 영 www.DrChoi.pe.kr


코미디는 말 그대로 희극입니다. 한마디로 웃기는 이야기라는 뜻이지요. 난센스는 센스, 즉 감각, 느낌이나 지각이 없다는 말입니다. 센스라는 뜻에는 '제 정신'이라는 뜻도 있으므로 난센스는 제정신이 아니라는 의미가 됩니다.

의료와 관련되어 복잡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2월 17일에는 여의도에서 의사들의 집회..... 명확하게 표현한다면 데모나 시위가 벌어집니다. 의사들이 데모를 한다니... 어떻게 보면 그 자체가 희극적인 상황일 수 있습니다. 언론 보도를 한번 살펴보기로 합니다.

    - 의료계 17일 또 대규모 집회…전국 '진료대란' 비상, 국민일보 2.11. 26면
    - 의사들 의약분업안 반발, 중앙일보 2.11. 27면
    - 의사 4만명 17일 여의도집회…전국 진료대란 우려, 동아일보 2.11. 31면
    - 거리로 나선 의사들/생존권투쟁-집단이기주의, 동아일보 2.11. 29면

제목들이 상당히 선정적입니다. "또", "대규모", "대란", "비상", "반발", "우려", "거리로 나선", "투쟁"... 마치 전쟁상황에서나 써볼 법한 용어들이군요. "집단이기주의" 왜 이번에는 그런 말이 나오지 않나 사실 걱정했다면 심한 농담이인가요? 요즈음의 언론 기관에서 사용하는 소위 유행어이기 때문입니다. 의사의 한 사람으로 이런 보도를 보면서 코미디와 난센스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올랐기에.... 이 글의 제목이 붙여졌습니다.

본 글을 쓰게 되는 전반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현재의 의료상황에 대한 한 가지 기사를 소개드립니다.

    [집중추적]거리로 나선 의사들/생존권투쟁-집단이기주의 동아일보 20000211 29면(사회)

    의사들이 ‘의료계의 생존권’을 외치며 가두투쟁에 나선다.

    17일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원은 4만여명. 작년 11월 30일 2만여명의 의사들이 장충체육관에서 모였던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은 숫자다. 작년에는 토요일 진료를 마친 의사들이 오후 집회에 참가했지만 17일 시위는 평일이어서 환자에 대한 진료차질 등 의료대란도 우려된다. 무엇이 그들을 거리로 내모는가. 최근 의사들의 강경한 움직임은 의사들이 느끼는 생존권의 위기가 그만큼 절박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현 불가능한 사항을 요구함으로써 어렵게 탄생시킨 의약분업을 무산시키려는 것은 국민 건강을 볼모로 한 집단이기주의라는 비판도 거세다.

     ▼동네의원의 위기▼

    정부는 작년 11월 15일부터 그동안 의료보험에서 고시가로 보상해주던 의약품값을 병원에서 실제 구입하는 가격으로 상환해주는 의약품실거래가상환제를 도입했다. 이 제도의 도입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곳이 내과 소아과 등 이른바 동네의원이다.

    이 제도 도입 이전에 병원들은 고시가보다 낮은 금액에 제약업체로부터 의약품을 대량 납품받아 고시가와의 차액으로 높은 약가 마진을 취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실제 구입가로 의료보험에서 지급받게 된 것이다.

    이날 집회를 주도하는 의권쟁취투쟁위원회(의쟁투)도 “정부가 저수가정책으로 인한 의료기관의 경영악화를 약가 마진으로 채우도록 인정해 그동안 동네 병의원이 운영돼 왔으나 실거래가상환제가 도입된 후 약가 이윤을 잃게 돼 병의원의 경영이 어려워졌다”고 시인하고 있다.

    이러한 실거래가상환제로 모든 병의원들이 똑같이 피해를 보게 된 것은 아니다. 정형외과 치과 등 약품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 곳은 별 상관이 없지만 상대적으로 약제비 비중이 높은 내과 소아과 가정의학과 등은 예상 외의 타격을 입었다. 특히 이들 동네의원들은 국민 건강을 최일선에서 책임지는 의료기관으로 동네의원이 무너지면 환자들이 큰 병원으로 몰려들어 진료비 부담이 올라가는 것은 물론 의료전달체계도 왜곡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후략)

여기에서 실거래가 상환제라는 어려운 단어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상의 상황을 설정해보기로 하지요.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의 보다 싼 물건을 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정책을 발표했다. 금년 3월부터 모든 백화점과 슈퍼마켓 (물론 동네의 구멍가게까지를 포함해서...)은 물건 값을 실제 자신이 구입한 가격으로 판매한다. 이윤을 붙여서는 안되며, 실제 구입한 가격을 정부에 신고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이를 위반할 시에는 사법적 처벌을 받고, 동시에 국민의 싼 물건을 살 권리를 침해한 파렴치범으로 신문지상에 그 명단을 공개한다.

    그 발표 며칠 후, 백화점 연합회와 슈퍼마켓 연합회에서는 이에 항의하기 위해서 점포의 문을 닫고 여의도에서 집회를 하기로 하였고, 정부에서는 준엄한 국법을 어기고, 국민의 불편을 초래한 혼란의 책임을 물어서 해당 주동자를 처벌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특히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행동이라는 공정거래 위원회 위원장의 특별 성명이 있었고, 각 언론 기관에서는 "대규모 반발", "쇼핑 대란 예상", "생필품 구입비상", "대혼란과 반발", "국민의 물건 구입 곤란 우려", "거리로 나선 백화점과 슈퍼마켓의 투쟁"... 그리고 "집단이기주의의 발로"라고 대서특필하면서, 불편을 겪은 시민과의 인터뷰를 자세하게 보도하였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요? 코미디니까... 그리고 제목이 난센스니까... 널리 이해하시길...

실거래가 상환제는 이런 것입니다. 이런 제도가 밀어붙여진다면, 결국 백화점과 슈퍼마켓, 구멍가게는 도산할 것이며... 그 결과 오히려 국민이 편리하고 저렴하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권리가 침해받을 것임은 불을 보듯이 뻔합니다.

이런 제도를 보면서 과연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지, 자본주의인지 사회주의인지, 극우나 극좌 체제인지에 대한 새삼스러운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한편의 코미디나 난센스를 보면서 웃음보다는 씁쓸함이 앞섭니다. 서글픈 일이군요.....

(후기 : 이 글을 쓰고 난 후 실거래가 상환제가 실시되었으며 지금(2000.11.8.)까지도 의사들을 리베이트 운운하는 논리로 중무장한 채 공격하는 언론보도를 자주 봅니다. 여기에서의 리베이트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현재까지는 실제 병원 운영을 직접 해본 적이 없으므로 일부 내용의 오류가 있을 수 있답니다.

개인의원을 경영하는 의사가 있다고 합시다. 한 개에 100원짜리 약이 있습니다. 의사가 그 약품 10,000알을 구입한다면, 총 구입가격은 100만원이 되겠지요. 많은 양을 구입했기 때문에 제약회사에서는 1,000개를 더 얹어주었습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110만원어치의 약을 100만원에 구입한 셈입니다. 물론 이 설명은 의약분업이 실시되기 이전의 이야기입니다.

그 차액 10만원을 언론에서는 리베이트 내지 검은 돈이라고 부릅니다.

이 논리대로라면, 1,000원 정가가 붙은 과자를 대량 구입하면서 개당 800원에 납품받은 슈퍼마켓은 리베이트나 검은 돈의 소굴이 되고 말 것입니다. 과연 대한민국이 자본주의 국가인가? 하는 의구심이 다시 생깁니다.) (처음 쓴 날 2000/02/16 고쳐 쓴 날 2000/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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