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그리고 난센스 - 점장이가 되어라

최 영 www.DrChoi.pe.kr


코미디는 말 그대로 희극입니다. 한마디로 웃기는 이야기라는 뜻이지요. 난센스는 센스, 즉 감각, 느낌이나 지각이 없다는 말입니다. 센스라는 뜻에는 '제 정신'이라는 뜻도 있으므로 난센스는 제정신이 아니라는 의미가 됩니다.

CT라는 것을 아시는지요? 전산화단층촬영이라고 해서 몸 안의 장기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검사방법의 하나입니다. 일반인들은 '컴퓨터촬영'이라고들 부르더군요. 일반적인 엑스레이와 같은 검사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깊은 곳의 조그마한 이상도 발견할 수 있는 굉장히 소중한 진단 방법이랍니다.이 검사가 몇 년 전부터 의료보험에 해당됩니다. 소위 보험 적용의 대상이 되는 진료라는 것입니다. 매우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CT를 무대로 해서 한편의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코미디.... 부디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연전에 이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개인병원 의사가 검찰에 끌려갔습니다. 그 사유는 뇌종양을 진단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의료과오 혹은 과실이라고 불렀답니다. 그 의사가 환자를 진료한 것은 1년 전의 일이었고... 아마 그 후에 다른 병원에서 뇌종양이 발견되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 의사가 해당 환자를 한두 번 진료하였던 것뿐이고.... 그 뒤로 그 환자는 오지 않았다는데.... 1년 후에 문제가 제기되었던 것입니다. 그 사유는? 그 흔해 빠진 CT를 찍으면 금방 진단이 가능한데... 뇌종양의 진단을 못 내렸다는 것은.. 돌팔이 아니냐... 그러므로 형사 사건이 되었던... 그 정도가 사건의 개요랍니다.

그렇습니다. CT를 찍으면 콩알보다 약간 큰 정도의 종양은 진단이 가능합니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한 의사의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모든 머리 아픈 환자를 대상으로 CT를 찍으라고 권유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두통이라는 것 자체가 인간이 가장 흔하게 경험하는 신체적인 증상이라는 것입니다. 열이 나도 두통, 피곤해도 두통, 혈압이 높아도 두통, 스트레스를 받아도 두통..... 우리는 어려운 일을 "골치아픈 일"이라고 표현하지요? 그만큼 골치 아픈 환자가 많습니다. 하지만 모든 환자에서 이런 검사가 필요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교과서적으로는 다 할 필요는 없지만, 법적인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백번 양보해서 모든 머리 아픈 환자에게 CT를 처방한다고 가정합시다. (실제로는 불가능한 가정입니다. 그 많은 머리 아픈 사람이 모두 한번 씩 한다면... 의료보험재정은 거덜날 것임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코미디의 본격적인 시작은 가정이 아닌 실제의 의료현장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의사가 진찰 후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 CT를 처방냅니다. 그러면, 검사를 하고.... 방사선과 전문의사가 판독한 결과가 나오게 되지요. 그런데.... 의료보험 공단에서는 이 검사 판독에서 이상이 나오지 않으면, 불필요한 검사를 한 것이므로 (이것을 보험공단에서는 과잉진료라고 부릅니다.) 검사비용을 병원에 지불해주지 않습니다. 그뿐인가요? 검사 당시에 환자가 직접 지불했던 검사 비용의 일부를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환자는 검사를 받은 후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아서 좋고, 공짜로 몇십 만원 하는 CT를 해서 좋고... 참 좋은 제도입니다.

의사와 병원은 어떻게 될까요? 고가의 장비를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검사를 했는데.... 돈은 한푼도 받을 수 없고.... 과잉진료... 소위 환자를 등쳐 먹는 모리배, 도둑놈이 되는 것입니다.

국가나 의료보험 공단은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대한민국 의료제도는 CT도 보험혜택을 주는 훌륭한 나라다!!!... 돈 안들고 생색 내고 손 안대고 코를 푸는 것입니다.

그 결과를 봅시다. 검사를 혹시 안하면... 불행하게(환자에게!) 나중에 병이 발견된다면 담당의사는 돌팔이라는 누명을 쓰고 경찰서에 잡혀갈 지 모릅니다. 다행스럽게(역시 환자에게!) 검사 결과 이상이 없으면... 의사와 병원은 불필요한 과잉검사를 한 도둑놈이 되는 불행이 닥칩니다. 둘 다 의사에게는 불행한 결과군요. (그래서 요즈음 의사들 사이에서 내 자식은 의대 보내지 말자 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저도 이 불행을 많이 경험했으며, 현재 상황대로라면 앞으로도 계속 불행의 연속일 것 같습니다. 제가 처방한 CT 검사에서 이상이 나오지 않으면, 보험공단에 일단 비용지급을 하지 않고(삭감이라고 부르더군요), 불만(?)이 있으면.... 이의 신청을 하라고 합니다. 그 검사가 꼭 필요하다는 사유서를 쓰라는 것입니다. 그 사유서는 어떻게 처리될까요? 의대 교수가 쓴 것을 보험공단의 심사 직원이 심사합니다. 그리고 심사 후에 역시 일정 %는 꼭 부당청구 혹은 과잉진료라는 누명을 제게 덮어씌웁니다. 우리나라는 의대 교수보다 심사과 직원이... 뭔지 모르지만... 전문적인 의학 지식을 더 가지고 있는 나라인 모양입니다. 그 사유서에 덧붙여서..... 모 병원에서는 의료보험 청구액 중 삭감이 몇%라는 즉, 몇%를 과잉진료해서 환자와 국민의 돈을 빼내먹었다(실제로는 의료보험 공단 자체에서 정한 규정과 목표%에 입각해서 일방적으로 못주겠다고 버티는 것임.)...라는 언론 보도가 나오게 됩니다. (많이 보셨지요? 저도 그 부분에 어느 정도 일조를 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의료보험 공단측의 항변도 있습니다. 의사들을 못믿겠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자기들의 기준대로 해라....는 것입니다. 한국에서의 진료는 교과서대로가 아니고 보험공단 급여지침서라는 위대(?)한 책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못믿으면 자신들이 면허증을 딸 일인데...? 그리고 경제적인 이득을 목표로 과잉진료를 정말 하는 의사는 민형사 상의 책임을 지우면 될텐데....

주제로 돌아갑시다. 그래서.... 검찰에 불려가지 않거나, 의료보험공단에서 도둑놈이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한국의 의사들은 점장이가 되어야 합니다. 머리 아픈 환자가 오면 요령껏 점을 쳐서 이상이 있을 것 같으면 검사하고, 없다는 점괘가 나오면 CT를 안하는 것입니다. 간단하군요.

그런데.... 이 점괘로 정확한 진단이 내려질 것 같으면 왜.... CT같은 정밀검사가 필요한 것일까요? 혹시 의료보험 공단에서는 앞으로 점장이를 의사 자리에 앉게 하려는 음모가 있는 것 아닐까요? 코미디와 난센스의 세상입니다.

(위 글을 쓰고 난 후에 더 기발한 방법이 생각났습니다. CT보다 세배는 비싼 MRI를 하는 것입니다. 아직 한국의 의료보험에서 비용지급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검사랍니다. 두통 환자에게 모두 MRI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험공단에서는 돈 한푼 (이것도 국민의 돈입니다.) 안나가서 좋고, 의사는 골치아픈 삭감에 대한 이의신청서를 적거나 과잉진료하는 도둑놈 딱지가 붙는 일 등이 없어 좋겠군요.

그러나 어쩝니까? 불필요한 검사에 많은 돈을 지불하는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국민전체의 의료비 부담 증가는 어쩌란 말입니까?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처음 쓴 날 2000/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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