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을 마친 청소년들에게

전남의대 정신과 / 전남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 정신건강클리닉
최 영


올 대입 수능시험 이튿날, "이제 시험도 끝났으니 이제부터 무엇을 할 생각이냐?"라는 저의 질문에 한 청소년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시간 나는 대로 막노동을 하면서 땀을 흘려보겠다. 그리고 그 동안 못 보았던 책을 실컷 보겠다." 통상적으로 말해지는 "논술시험과 면접을 준비하겠다."가 아닌 이 대답을 들은 제 마음에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유는 글을 끝까지 읽으시면 알게됩니다.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치고 나면, 이곳 저곳에서 말들이 많습니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 무척 어려워서, 시험을 치르는 도중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고, 며칠간 학생들의 분위기가 침울하고 혼란에 빠져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부모들의 항의전화가 교육당국에 빗발친다고 합니다. "내 인생이 끝장났다. 죽고만 싶다"는 상담도 들어옵니다. 실제로 비관 자살했다는 풍문도 들었답니다.

해마다 쉬우면 "변별력이 없어서 문제다", 어려우면 "과외를 부추긴다"며 교육정책 담당자들을 비난하는 소리가 높습니다. 춘향이가 널뛰기하거나 그네를 타는 것도 아닌데, 오락가락 하는 당국도 문제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시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지금부터 자신이 할 일을 찾아서 실천하는 청소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험은 끝났습니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요, 떠나 가버린 버스입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되 담을 수 없다"는 진리를 명심하고, 지난 일에 대한 미련이나 후회는 깨끗이 버려야 합니다. 시험은 모두에게 다 어려웠을 것이고, 이번 시험 하나만으로 인생의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한번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식의 잘못된 생각은 떨쳐버려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사실 여러분들에게는 더 중요한 "밀린 숙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현대의 청소년 문제를 말할 때 "모라토리움 (moratorium: 유예)"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됩니다. 해야할 일을 뒤로 미룬다는 의미입니다. IMF 시대에 접어들면서 "나라의 빚을 갚는 것을 뒤로 미루겠다"라며 모라토리움을 선언했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실제로 대학입시라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많은 청소년들이 성인기를 준비하기 위한 과제를 뒤로 미루어왔고, 실제로 소홀히 해왔습니다.

청소년기의 과제 중 첫 번째는,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급격한 신체적 변화에 따른 공격적인 충동, 그리고 성(性)적인 충동을 어떻게 잘 다루는가하는 것입니다. 시험 준비 때문에 많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내부에서 샘솟는 충동을 억제하고만 지내왔습니다. 이제 조금은 풀어주어야 합니다. 격렬한 운동, 야외 활동, 다양한 예술, 취미활동 등을 통해 마음껏 발산해보십시오. 또래와 어울리고 이성과의 좋은 만남을 가져보십시오. 물론, 방종이 아닌 자율과 책임이 전제 조건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두 번째 숙제는,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심리적으로라도 말입니다. 이제까지 전적으로 의지해왔던 부모에게서 벗어나 장차 성인으로서의 독립적인 생활을 준비해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매사를 어른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 스스로가 판단을 내리고, 그 결정에 따라 홀로 실천하며,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마음자세가 필요합니다. 시험을 핑계로 부모에게 미루어 왔던 "내 것", "내가 할 일"은 "자신"이 합시다.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한 숙제입니다. 소위 자아 주체성 또는 자아정체감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란 존재는 이 사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내 인생의 목표와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땀을 흘려야 합니다. 대부분의 청소년에게는 이 숙제 역시 입시 준비를 핑계로 미루어져 왔을 것입니다. 장래 직업, 사회적 역할, 인생의 목적 등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직업에 대한 탐색이 당장 시급한 것입니다. 수능 점수보다는 자신의 적성과 소질에 맞는 직업을, 당장이 아닌, 10년 20년 후의 미래를 바라보면서 결정해야 합니다. 동시에, 깊이 있는 독서와 대화를 통해 인간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를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져보십시오.

글머리에 제가 흐뭇해했던 것은, 그 답이 청소년기의 숙제 또는 과제에 충실한 대답이었기 때문입니다. 수능시험이 끝난 것은 긴 인생에서 작은 한 계단을 올라섰을 뿐이라는 것,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계단으로 올라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할 때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 2001.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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