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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머리 깎기

최 영 childpsy@drchoi.pe.kr

춘천이야기, 그리고 첫 임신


호반의 도시 춘천.... 탁 트인 소양호의 전경, 그리고 이디오피아라는 이름을 단 카페에서 바라본 창밖의 모습,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어린이 회관(맞나? 벌써 가물가물하다니....). 지금도 마음 한쪽에 인상깊게 남아있습니다. 현재는 10여년 전의 장면과 많이 달라졌겠군요.

저는 그곳에서의 군의관 생활 중의 어느 초가을 날 결혼을 했습니다. 당시 근무하던 군 병원의 총각 3인방에서 가장 먼저 딱지를 떼게 되어서 부러움과 시기를 한 몸에 받았지요. 답답하고 퀴퀴한... 냄새나는 BOQ(군대의 독신자 숙소)에서 벗어나 당시 신흥 주택가였던 후평동의 어느 강원대 교수님 댁 2층에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집주인이 직접 설계 과정부터 공사까지 감독해가면서 정성들이여 지은, 특별 주문했다는 빨간색 벽돌의 2층 양옥.... 방 2개의 14평의 공간이었지만 "나중에 형편이 펴지면 이런 집을 짓자!"라는 생각을 할만큼 멋진 집이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그런 집을 지을 수 있을지는 매우 불투명하기 때문에 공수표 남발 아니었나 싶네요)

첫 임지가 그나마 도시였기에 군인 신분으로서는 나름대로의 문화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습니다. 기껏해야 함흥냉면 아니면 아리산이라는 중국 음식점의 짜장면을 같이 먹고, 명동 거리를 거니는 것, 그리고 영화관람이 문화생활의 다였습니다. 첫 월급이 17만원이라서 그랬는지 원....

제가 부대에 출근하면 처는 서울로 대학원을 다녔기 때문에 나름대로 바쁜 생활을 해나가고 있었는데.... 결혼 후 반년 정도 지나서 서울에서 학회가 있었는데, 학회 마친 후 저녁에 같은 의국 출신들의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만나는 사람마다 하는 질문이 똑 같더라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아이가 생겼냐", 즉 임신했느냐? 였습니다. "빨리 낳고 빨리 키워야지... 제대하고 나면 바쁘니까..."라고 이어지는 선배들의 질문과 충고에 대한 저의 답은 "때가 되면 생기겠지요" 정도로 기억됩니다. 물론 평소에 부대에서도 들었던 질문이라 웃고 넘겼지만, 그리 썩 상쾌한 물음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 임신 사실을 알았습니다. 계산해보니 학회 때는 이미 아이가 생긴 뒤였더군요(알았더라면 자랑스럽게 말했을까요?).

임신은 생물학적 사건이지만, 여러 가지 심리적 의미도 있습니다. 첫 임신 사실을 통보 받을 때 기뻐하는 부모들의 마음 한쪽에는 "아, 나도 확실한 남자(여자)구나"라는 외침이 있습니다. 남들에게 공식적으로 생산능력이 있음을.... 그래서 생물학적으로 완전한 남성이요, 여성이라는 것이 증명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씨 없는 수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릴 수 있다는 것. 처음 임신 사실을 알게된 부모가 느끼는 기쁨의 원천일 수 있습니다. 저도 그랬답니다. (1999/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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