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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머리 깎기

최 영 childpsy@drchoi.pe.kr

태교 이야기 : 침대 머리 맡에 붙여둔 엽서 두장


아이를 가진 상태에서 대학원을 다니느라 경춘선을 주마다 몇 번이고 오가야 했기 때문에 아내는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남편은 오후 5시전에 칼 같이 귀가하고 그 후로는 할 일 없이 TV나 보면서 뒹굴거리기만 했지요. 육체적으로는 너무 편하고 남은 반찬까지 싹스리해서 체중증가를 이룩한 결과, 아내의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기쁘게 해준 것 밖에는 집에서 한 일이 없답니다.) 더욱이 별로 잔정이라고는 없는 남편 덕분에 먹고 싶은 특별식도 변변히 제공받지 못하고 소위 임산부로서의 당당함을 별로 누리지지 못했지요.

특히 첫 아이를 가졌던 해의 여름은 10여년 만에 처음이라는 특별히 무더웠던 폭염이었답니다. 호수로 둘러싸인 춘천의 특성 상 습기가 많아서 소위 불쾌지수가 무척 높았었고, 낮 동안 달구어진 2층 양옥집의 뜨끈뜨끈한 열기를 세숫대야에 떠놓은 물에 발을 담그거나, 가끔씩 저녁 무렵 소양댐 아래 흐르는 물의 한기를 느끼는 정도로 이겨내야 했던, 그리고 아주 가끔 팥빙수를 먹을 수 있었던... 임신한 아내로서는 무척 곤혹스러웠던 시절이었으리라 기억되는군요.

임신 과정에서 태교는 어떻게 했느냐를 물어보는 분들도 있었습니다만.... 이거야 원.... 특별히 생각나는 것이 없군요. 다만 아내가 문방구에서 구해온 그림 엽서 두장이 기억납니다. 모자를 눌러쓴 채 개구쟁이의 전형적 미소를 띤 사내아이가 그려진 한장, 그리고 예쁜 공주 스타일의 복장을 한 여자아이 그림 한장이 나란히 침대 머리에 붙여졌던 것이지요. 아마 그런 귀엽고 예쁜 아이를 낳고자 하는 소망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좋은 생각만 하고,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마음씨를 편안하게 쓰는 것이 아마 태교의 핵심일 것입니다. 하지만 대학원 강의 들으러 편도 한시간 반의 경춘선 기차나 버스에 몸을 싣고 왔다갔다하랴, 논문을 쓰랴, 살림하랴... 사실 태교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으므로, 엄마가 공부하는 것이 태교의 전부였다고 할 수 있었답니다.

아빠의 태교는? 글쎄요. 아마 하루에 한 두 번씩 침대 곁의 그림을 들여다보는 것 말고는 전혀 한 것이 없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적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아빠가 된다는 것에 대한 실감을 전혀 못하고 준비도 전혀 없는 말 그대로 아마추어 예비 아빠였답니다.

놀라운 사실은 첫 애의 미소를 볼 때마다 그 그림의 미소와 어찌 그리 닮았던지... 여러분도 아이를 낳을 계획이 있으시다면 한번 붙여보십시오. 머리맡에 말입니다. (1999/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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