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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머리 깎기

최 영 childpsy@drchoi.pe.kr

8년 7개월 터울의 늦둥이 둘째


첫 아이를 키우면서 저나 집사람이나 대학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첫 아이가 돌 지난 후부터는 할머니가 저희 집으로 출퇴근을 하면서 아이를 봐주셨는데, 몇 년 동안 둘째에 대한 대단한 압력을 받았습니다. 당시 제 어머님이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 "내가 조금이라도 젊고 힘이 있을 때 둘째를 낳아야 봐줄 것 아니냐?"

나름대로는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어느 정도 터울이 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처음 몇 년간은 차일피일 미루었답니다. 소위 고의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갔습니다.

첫 아이가 비교적 독립적이고 혼자 놀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집안 분위기는 비교적 차분함 그 자체였습니다. 엄마, 아빠 일을 방해하는 일도 없었고....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몇 년이 흐르자 조금은 적막한 분위기가 집안을 지배했답니다. ("나만 그랬었나?" 아이 엄마에게 물어봐야겠군요...) 다른 가족이나 동기 모임에 갔을 때 다른 형제들의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모임이 끝나고도 계속 다른 아이들과 같이 놀고 싶어하는 모습, 그리고 사촌 동생들을 남자아이답지 않게 예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둘째를 가져야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에, 부모님의 성화에 못이기는 척.... 둘째를 가지기로 했습니다.

춘천에 살던 때 집주인이었던 교수님 부부 이야기를 잠시 해야겠군요. 당시에 둘째를 여럿 보고도 남을 나이가 된 딸만 한 명을 두었던 분들입니다. 왜 하나만 낳으셨느냐는 저의 질문에 들려주신 충고랍니다. "첫 아이를 낳고 자리잡느라 피임을 몇 년간 했는데..... 이제는 노력해도 안 들어서네요. 최 선생은 젊을 때 빨리 낳으세요" (그 뒤에 득남이나 득녀를 하셨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저희도 그 교수님 부부를 동일화(identification, 동일시라고도 불리며 주위 사람의 행동이나 태도를 닮는 것을 일컬음)했던지... 똑같은 현상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는 개인병원과 대학병원의 불임클리닉을 드나들었고, 그 와중에 남편도 와야 된다는 그 곳의 요구에 저도 끌려 갈 뻔했습니다만.... "첫 아이를 생산한 능력(?)있는 남자인데 무슨 소리냐?"며 버텨내던 도중...... 원하던 둘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쨌거나 그 과정에서 불임 부부의 심리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높아졌던 것이 학문적인 성과라고나 할까요? 그런 우여곡절을 거쳐 8년 7개월 터울의 늦둥이 아빠가 되었습니다.

첫째와 둘째를 가지는 과정에서 공통점이 하나 있었답니다. 첫 아이는 아내가 서울에서 석사과정 대학원을 다니는 도중에, 그리고 둘째도 다른 대학의 또 다른 석사과정(여러 사정으로 계열이 다른 석사를 또 들어갔기에....)을 밟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아내가 농담으로 가끔 하는 말입니다. "나 석사.... 또 할까?" (1999/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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