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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머리 깎기

최 영 childpsy@drchoi.pe.kr

바보 선언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부모보다도, 그리고 스승보다도 훌륭한 자녀나 제자가 자라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도 이 청출어람을 바라는 사람입니다. 저에게 교육받은 의과대학생, 정신과 레지던트들이 저보다 짙은 색을 띄기를 바라마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제 아이들도 창조적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성취하기를 소망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의 바램을 성취하기 위해 아빠로서 좋은 태도를 가졌는가는 의문입니다. 아니, 의문이 아니라 결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입니다. 그렇지 못했다는 예를 소개합니다. 부끄럽지만... 큰 아이가 5학년 2학기 학급 홈페이지에 올린, 자신을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 나이 : 11세
  • 몸무게 : 33.5Kg (註: 왜소하지요?)
  • 별명 : 호빵맨 (註: 얼굴이 동그랗고 볼에 살이 많아서 그런 별명이 붙은 것 같군요. 요즈음은 많이 갸름해졌답니다.)
  • 좋아하는 음식 : 만두,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註: 편식의 흔적입니다. 외식을 하면서도 밥과 반찬은 멀리한 채, 아빠의 강한(?) 권유에도 불구하고 주 메뉴만 꿋꿋하게 먹어댄답니다.)
  • 싫어하는 음식 : 조기, 조개, 낙지 등 (註: 둘째가 좋아하는 메뉴랍니다. 비슷하게 키웠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성향이 차이가 나는 것은 결국 아이의 타고난 생물학적 기질(temperament)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줍니다.)
  • 장래희망 : 판사, 검사, 변호사 (註: 이 부분에 대한 것은 저도 금시 초문이었답니다.)
  • 저는 최**이라는 11살 남자입니다. 컴퓨터, 수영, 수학을 잘하고 독서, 바둑, 게임, 통신이 취미입니다. 밥을 잘 먹지 않고, 성격은 소극적이고 언제나 혼자가 좋습니다.

성격은 소극적이며 언제나 혼자가 좋다... 작은 충격이었습니다. 이 말은 누구의 말일까요? 아이의 말이 아닙니다. 제 어미, 아비(특히 아비!)의 모습이 아이의 마음속에 메아리치고 있다는 것이지요. 부모가 소극적으로 자라게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키우는 양육방식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는 독재형(authoritarian style)입니다. 어떤 절대적인 기준을 정하고 자녀에게 특정 행동이나 태도를 요구합니다. 질서, 복종, 전통에 가치를 부여하지요. 반항하면 탄압 만이 뒤따를 뿐입니다. 이런 부모 아래서 자란 자녀는 자율성과 독립성의 꽃을 피우기 힘듭니다. 물론 겉으로는 모범생일 수도 있겠지만... 독재는 결국 무기력한 복종이나 극단적인 쿠데타를 불러오게 됩니다.

둘째는 허용과 방임형(permissive-indulgent style)입니다. 아이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고 행동하도록 허용합니다. 제한을 하거나 처벌은 없지만, 지나친 행동에 대해서조차 그냥 놔두어버립니다. 이런 경우 자녀의 창조성과 자율성이 높아질 수도 있지만, 응석받이가 되거나 남의 권리를 무시하는 문제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은 권위형(authoritative style)입니다.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성숙한 행동을 기대하지만 자녀의 의견을 잘 들어줍니다. 부모 자신의 실수도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압니다. 의사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므로, 자녀도 어느 정도의 한계 안에서 자신감 있게 스스로를 잘 통제하고 남을 이해하는 성숙한 성인으로 자라게 됩니다.

큰 아이가 써놓은 글은 제가 첫째 유형으로 자녀를 키워왔다는 뜻입니다. 이제 아이가 먼저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도와주고, 아빠가 아닌 아이의 눈 높이에 맞게 요구하고, 적당하게 허허... 웃으면서 눈감아 주렵니다. 그러려면, 조금은 바보스러운 아빠가 되어야겠군요.

청출어람을 바라신다면 바보가 되어보십시오. 저도 새 천년의 바보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렵니다. (200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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