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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머리 깎기

최 영 childpsy@drchoi.pe.kr

네 살 되면 볼링 칠거야!


새해를 맞기 얼마 전부터 둘째에게 이제 네 살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미리 미리 준비를 시키는 것..... 제가 좋아하는 양육 방식입니다. 아직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는 때이므로 나이의 개념을 가르쳐 준다기보다는, 그저 처음 보는 사람이 나이를 물어왔을 때, 적절한 대답을 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의미였습니다.

연말에 첫째가 동생에게 물어봅니다.

"**아... 네 살 되면 뭐 할거야?"

둘째 아이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볼링 칠 거야!"

온 가족이 함께 할만한 마땅한 운동이 없어서, 지난 해 후반부터 주말이면 가끔씩 볼링을 치러 다녔는데, 둘째가 자꾸 무거운 볼링 공을 안고 낑낑거리면서(형과 똑 같이 행동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자신도 같이 하겠다고 주장하기에, "세 살은 안 된다. 네 살이 되면 할 수 있다"고 얼버무린 적이 몇 번 있었답니다. 그 후유증이 네 살 되면 볼링 칠 거야...지요. 미봉책이 얼마나 문제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예가 되는군요.

새해를 맞아서도 둘째가 실제로는 27개월 반 밖에 되지 않는데, 네 살이라고 불리는 것은 어쩐지 합리적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 식으로 나이를 계산한다면, 태어나자마자 한살이요, 새해를 맞으면 또 한 살을 먹게됩니다. 12월에 태어난 아이는 이듬해 1월이 되면 세상구경을 1개월 밖에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졸지에 두 살이 되어버립니다.

실제로 이런 나이 계산 때문에 아이들의 진료과정에서 애를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몇 살에 말을 시작했는가를 물어보면 많은 부모들의 대답은 세 살 또는 네 살.....입니다. 말이 늦터졌나 싶어 다시 확인해보면, 실제로는 돌 지나서, 혹은 두 돌 이전인 때가 많았답니다. 만으로 대답을 해달라고 미리 이야기해도 번번이 재확인을 해야만 되더군요.

미국에서의 연수과정에서 지도교수와 아이들의 나이에 대한 이야기 도중에, 한국식의 나이 계산법이 좋다는 자랑을 짧은 영어로 설명했던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태어나자마자 한 살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엄마 뱃속에서의 기간을 산정한, 상당히 합리적이고 생명을 존중하는 인간관을 반영한 것이다! 어쩌고저쩌고... 구라(?)를 쳤었는데(딴지일보 식의 용어 사용에 너그러운 양해를 바랍니다)..... 하지만, 해가 바뀌면 한 살을 더 쳐주는 방식에 대해서는 논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했습니다.

해가 바뀌면 무조건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양육에서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사실, 아이의 알려진 나이에 따라 어른들의 기대나 바램이 정해지고, 그 기대나 바램에 못 미칠 경우에는, 아이에게 실망하거나 아이의 능력에 맞지 않는 강요를 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월 수나 만 나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쨌거나.... 이제는 둘째에게 더 이상 네 살 되었느니 뭐 할거냐를 선뜻 물어보지 못합니다. 볼링을 친다고 하면 큰일이니까요. 하지만 걱정입니다. 볼링장에 갔을 때, 과연 자신도 네 살 되었으니 볼링 친다고 우기면 어떻게 설득을 해야할지 말입니다.

"음력으로 설을 지나야 네 살이 되는 거야", 그리고 설 지나서는 "만으로 네 살"이라고 우겨야 될지.... 쩝...  (2000/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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