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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머리 깎기

최 영 childpsy@drchoi.pe.kr

양철북


육아일기에서 느닷없이 등장하는 이 제목을 보고 독자 나름대로 여러 가지를 떠올릴 수 있겠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은 몇 년 전 출시된 어느 여성 언더그라운드 락 가수의 앨범을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폴커 슐렌도르프 감독의 영화 양철북(Die Blechtrommel 영어로는 The Tin Drum)을 먼저 떠올리실 것입니다.

이 영화는 199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해서 더욱 유명해진 폴란드계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1959년도에 출간된 소설을 1979년도에 영화화했고, 1999년에 노벨상을 받았으니, 이 작품을 두고 정확히 20년 간격으로 뭔가가 벌어지고 있군요...

대략 기억나는 줄거리는 더 이상 자라기를 거부한 오스카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세상이야기랍니다. 주인공은 성인이 되어서도 세 살의 크기로 남아서, 양철북을 자신의 분신처럼 매고 다닙니다. (註: 귄터 그라스가 작가가 되기 전 드럼 연주로 생계를 꾸려나간 적이 있답니다. 입만 열면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진리를 확인시켜주는 좋은 사례군요.) 성(性)과 관련된 주제가 비교적 무거운 분위기아래 전개된 영화입니다.

영화 양철북은 칸느와 아카데미에서 수상을 했고 독일영화로는 드물게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답니다. 우리나라의 TV에서도 방영한적이 있는데, 묘한 것은 몇 년 전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한 법정에서 포르노라는 판결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여튼 제가 받은 느낌은 에로틱하다기 보다는 무겁다는 것이었습니다. 하기야 포스트 모더니즘이라고 분류되는 작품들의 공통적인 속성이니까요... (註: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것은 저도 잘 모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쟁은 사양합니다)

이야기가 옆으로 흘러갔군요. 저는 80년대 후반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춘천의 어느 조그마한 극장에서 아내와 함께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당시 신혼생활 중이었고 첫 아이를 가진 상태였는데, 영화관람이 당시의 유일한 문화생활이었습니다. 그후 양철북에 대한 기억은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첫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할 무렵...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 혹은 "꺅!"하는 괴성을 질러대는 것이었습니다. 영화 속의 오스카가 질러대는 높은 톤의 괴성.....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유리잔들이 깨져 나갔었지요. 그 괴성을 내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저희 부부는 아마 임신 중에 양철북을 보았던 것, 그래서 그 장면을 혹시 아이가 기억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을 주고받았답니다.

그런 조그마한 사건이 있은 후 정확히 8년 반이 지나서... 똑 같은 상황이 둘째에서도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양철북의 그 장면이 머리에 떠오르더군요. 둘째를 가졌을 때는 양철북을 결코 보지 않았습니다만....

(덧붙이는 글: 돌 지난 후의 아이들에게서 이런 모습은 비교적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발성기관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게된 자신의 능력을 즐기면서 자랑하는 모습일 수도 있답니다. 일시적인 이런 행동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못하게 제지하는 것보다는, 상황이 허락한다면 부모님도 같이 괴성을 질러서 놀아주는 기회로 삼으실 것을 권합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되는 경우는 발달에 어떤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므로 전문가와 상의해보십시오.) (200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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