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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머리 깎기

최 영 childpsy@drchoi.pe.kr

나비야 날아라...


둘째가 만 30개월 되던 무렵.... 2000년 2월 어느 토요일 오후의 이야기입니다. 첫째의 생일파티를 집 근처 햄버거 가게에서 마친 후 십여 명이나 되는 대 군단(?)이 집에 몰려와서 한참을 뛰놀았더랍니다. 얼마 후 형과 친구들은 학교 운동장으로 축구를 하러 간다며 법석을 떨었습니다.

그때, 둘째가 형들을 따라나서겠다며 옷을 챙겨달라고 요구했고, 그 조건은 "엄마, 아빠는 따라오지 말아라"였습니다.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엄마, 아빠와 떨어지겠다는 표현을 한 것입니다. 이때 제 머리 속에 떠오른 단어가 "나비"랍니다.

분리-개별화(separation-individuation)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아이가 지금까지 의존해왔던 어머니와 떨어져서 생활할 수 있게되는 심리적 과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제는 어머니가 자기 곁에 없어도 어딘가에 존재하며, 자신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이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잡았다는 증거입니다. 그것을 대상 항상성(object constancy)라고 부릅니다. 전문적 용어가 반복되어 좀 곤란하다고요? 그냥 넘어가셔도 됩니다.

즉, 한 개인 혹은 개체(individual)로서 심리적인 자아의 탄생(psychological birth)이 이루어졌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쉽게 표현해서 마음이 태어나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좋겠군요. 이런 마음의 탄생은 대개 만 3세 경에 이루어집니다.

프시케(psyche)란 단어를 아시는지요. 마음이나 영혼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나비라는 뜻이 있답니다. 나비는 기나긴 애벌레 생활을 마친 후 번데기가 되고, 그 번데기에서 껍질을 깨고 나와 아름다운 날개를 펴고 봄날의 정기를 마시며 날아다닙니다. 이런 나비의 탄생을 인간의 심리적 탄생과 비유해서 프시케라는 절묘한 단어가 만들어졌음에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형과 형 친구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학교를 향하고 있는 둘째의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이제 껍질을 깨고 봄날의 따사로움과 자유를 즐기는 "새 나비"의 출정식에 축하를 보내면서도.... 아빠의 마음 한 귀퉁이에 허전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인 일일까요?

"나비야. 날아라.... 네 마음껏 ...." (2000/03/02)

Der Vogel kaempft sich aus dem Ei. Das Ei ist die Welt. Wer geboren werden will, muss eine Welt zerstoeren. - aus Demian, Hermann Hesse -

새는 알에서 깨어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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