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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머리 깎기

최 영 childpsy@drchoi.pe.kr

아빠는 최면술사


 "아빠는 최면술 하세요?"

동생을 재우고 거실로 나서는 저를 보고 첫째가 던진 질문입니다. 둘째가 두 돌 무렵의 어느 날이었답니다. 요지는 동생 잠을 그렇게 빨리 잘 재우느냐...는 반은 칭찬의 의미를 담은 것이지요. 그리고 정신과 의사니까 최면을 전문으로 하지 않을까 하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 동시에 최면술에 대해 자신이 잘못 알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많은 일반인들이 최면을 잠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마 이 배경에는 최면(催眠 hypnosis)이라는 말 자체가 수면(睡眠) 즉, 잠과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 혼자 유추해 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히프노스(즉, 잠의 신)에서 유래한 단어가 최면이기도 합니다. 아마 최면을 잠과 동일시했던 것의 역사적 증거일 수도 있겠군요. 이 히프노스의 쌍둥이 형제이름이 타나토스(즉, 죽음의 신)니까.... 최면을 죽음과의 사촌 정도로 생각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일반인의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나봅니다.

또 옆길로 이야기가 가고 있군요.

어쨌거나, 최면은 잠이 아닙니다. 최면 상태의 뇌파(EEG)는 잠들었을 때의 뇌파와는 다릅니다. 오히려 정신이 총총한 즉, 각성 상태의 뇌파와 오히려 비슷합니다. 그리고 최면이란 정신적으로 어떤 한가지에 집중하는 상태를 말하므로, 전혀 잠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일상 생활에서도 일종의 최면 현상은 존재합니다. 공상이나 백일몽에 푹 빠지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나 게임에 철저하게 몰입하는 것,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의 말을 집중해서 경청하는 것, 청춘남녀가 뜨거운 사랑에 빠진 상태.... 등입니다.

제가 아이를 재울 때는 몇 가지 단골메뉴가 등장합니다. 특별한 기술이랄 것은 없고요.... 단순한 주제의 이야기, 잔잔한 노래 정도를 반복적으로 들려주는 것입니다. 가능한 아이에게 지나친 흥분을 유발하지 않는 정도로 제 이야기나 자장가에 집중을 시키려는 노력을 했다는 점에서는 최면술과 비슷한 점도 있겠습니다.

"편안한 자세로.... 가만히 눈을 감고.... 자신의 숨소리에 집중해 보십시오... 이제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집니다...(후략)"

최면을 유도할 때 처음 시작하는 말 중의 하나랍니다. 다음은 제가 재우면서 아이에게 사용했던 말의 예입니다.

"이제... 눈을 감고.... 아빠 이야기를 들어봐... 이제... 눈을 감았구나.... 아빠도 눈을 감았는데.... 옛날에 농부 아저씨가 살고 있었거든.... 농부 아저씨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을 하고 있었어.... 그런데, 토끼가 한 마리 나타났어.... (중략)....  토끼가 집으로 돌아갔어... 이제 밤이 되었어... 밤에는 해님도 잠을 자고... 농부 아저씨도 잠을 자고.... 아빠도 잠을 자고...(후략)"

어떻습니까? 최면 유도문과 조금은 비슷 한가요? 대개 이런 이야기가 반쯤 진행되다보면 아이는 잠을 자게 됩니다.

마치 물 흐르듯 잔잔한 어조, 달래고 어루만지는 듯한 말투, 긍정적인 내용 ...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가지는 것, 그리고 최면 유도자의 말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것.... 최면술의 기법을 빌려서 아이를 편안하게 재우는 저의 방법이랍니다. 물론 더 자라버린 지금에는 사용하고 있지 않은 과거형입니다만....

(덧붙이는 글: 이 과정에서 진짜 최면에 걸리는 사람은 누굴까요? 잠드는 아이가 아니라, 아이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면서 편안해지는 아빠가 아닐까요?) (200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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