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choi.pe.kr 배너

제 머리 깎기

최 영 childpsy@drchoi.pe.kr

아들의 여자 친구


(PC의 스 피커가 켜 있으면 음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들리지 않으시면 곡명을 클릭하세요 Girl )

지난 주말에 저희 집에 전화가 왔었습니다.

주말에 저희 집에 걸려오는 전화는 친척 외의 사람이 걸었다면, 대개는 잘못 걸린 것이거나 큰 아이에게 오는 전화랍니다. 자전거 타자, 수영장 가자 또는 내일 숙제나 준비물이 뭐냐? 라는 용건이 대부분이지요.

이번 전화는 아내가 받았는데.... 어떤 여자아이가 남자 목소리를 흉내내서 낮은 목소리를 깔며... "누구 친군데요.. 누구 있어요?"라고 했답니다. 모른 척하고 바꿔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자아이가 오늘 뽀글뽀글하게 파마를 했다는 소식을 아이에게 전했답니다. 제 입장에서는 기상천외의 용건이었습니다. 목소리를 위장해서 걸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조금은 지나치게 사적인 용건에서... 그냥 전화가 아니고 나름대로는 어떤 의미를 가진 전화였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큰 아이의 여자 친구에 대해 제가 알게 된 것은 4학년 말 아이의 생일파티에서 였습니다. 파티를 하는데 다른 아이들이 굳이 어떤 여자아이를 곁에 나란히 앉히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실소를 금치 못했으며, 집에 온 그 여자아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짧은 치마를 입은 정장차림에 유난히 얌전을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4학년을 마치면서 만들어진 학급 문집에 개인별로 다른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말을 남기는 페이지가 있었는데..... 두 아이의 공간에는 "둘 사이의 우정이 영원해라"식의 글이 도배되어 있어서, 아마 적어도 아이의 반 안에서는 공인된 관계였나 봅니다.

그 뒤 새 학년이 되면서 반이 갈리고 나서는 소식이 잠잠하더니.... 다음 해의 생일파티에는 다른 여자아이와 나란히 앉았었고, 6학년 들어서는 또 다시 새로운 여자아이와 비밀 교환일기를 쓴다고 해서 "청출어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차에 .... 작은 전화 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물론 또 다른 제4의 여자친구였답니다. (청출어람에 굳이 부연설명을 더한다면,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남녀유별로 반이 정해졌고, 더구나 초등학교를 세 군데나 옮겨 다니는 바람에 공인된 여자친구는 없는 것이 필연이었습니다.)

지속되는 이런 관계에서 제가 보기에는 대개 여자 아이들이 주도권을 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아빠의 일방적인 오해일 수도 있습니다.)

프로이드는 정신분석적인 관점에서 초등학교 무렵을 잠복기(latency stage)라고 불렀습니다. 만 여섯 살 무렵부터 사춘기 이전까지를 말하지요. 성(性)적인 욕망이나 에너지인 리비도(libido)의 표현이 별로 없고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답니다. 구강기(oral stage), 항문기(anal stage)라는 용어를 들어보신 분도 많을 것으로 믿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이런 정황으로 보아, 이제 서서히 아이가 이 잠복기를 벗어나는 것 같습니다.

몇 년전 제 밑에서 수련을 받았던 전공의가 제게 물어본 질문이 떠오릅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이었습니다.

"선생님 아드님이 나중에 커서 마음에 안드는 여자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하실래요?"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내 인생이 아니고 아이의 인생이니.... 싫어도 어쩔 것이냐? 정도로 대답했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아이가 다음 단계로 어떻게 도약하는지? 곁에서 지켜볼 따름입니다. 아이는 아이의 인생을 가고 있으니까요.... (2000/05/29)

이전 - 다음
HOME - 제머리깍기 목록 - 방명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