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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머리 깎기

최 영 childpsy@drchoi.pe.kr

이발소와 딸꾹질


살아가면서 한번 정도 딸꾹질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은 저절로 멎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 아이오와 주의 한 남자는 무려 60년 동안을 쉴새 없이 딸꾹질을 했다니 마음 고생이 얼마나 심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딸꾹질은 대개 가슴과 배 사이를 나누는 막인 "횡경막"이 일정 간격으로 경련하는 것처럼 움직여서 생깁니다. 대부분은 특별한 원인이 없이 나타나며 과음이나 과식, 온도의 변화, 음주, 과도한 흡연, 흥분이나 스트레스 등을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숨을 참은 상태에서 계속 침 삼키기, 물이나 음식을 천천히 삼키기, 깜짝 놀라게 하기, 설탕 한스푼 먹기, 혀를 잡아당기기, 코를 간지럽히기, 귀를 자극하기 등 많은 방법들이 이용되지만... 효과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소위 "민간요법"들입니다.  

제 큰애는 만 서너살 무렵부터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특이한 딸꾹질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이발소에 가서 이발의자에 앉기만 하면 딸꾹질을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동네의 허름한 이발소에 데리고 가서 머리를 잘라주는 것이 아빠로서의 작은 책임이었지요. 처음에는 머리 자를 때 느끼는 간지러움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점차 이발을 할 때마다 계속 그러는 것으로 보아 소위 "조건반사"가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조건반사란 이런 것입니다. 개에게 음식을 주면 침을 흘리게 됩니다. 음식을 주면서 동시에 종을 치는 상황을 계속 반복하게 되면, 나중에는 종소리만 울려도 개는 침을 흘리게 됩니다. 정신과에서 흔히 하는 치료법인 행동치료의 이론적 배경인 학습이론 중 하나랍니다.

아이의 이발소 딸꾹질에 대한 제 가설은 그랬습니다. "간지러움이 딸꾹질을 유발하고 이 간지러움은 이발하는 상황에서 경험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이제는 간지럽지 않더라도(실제로 가려움이 전혀 없는 상태로 이발의자에 앉기만 해도 딸꾹질이 시작되었지요), 이발이라는 상황에서 딸꾹질을 하게 된다."

(이런 유사한 상황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실내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플래쉬가 터집니다. 이 밝은 불빛에 아이는 눈을 깜박이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다 보면 아이는 실제로 플래쉬가 터지지 않아도 카메라만 들이대면 눈을 깜박이게 됩니다.)

머리를 자르는데 딸꾹질을 하게되면 이발에 지장이 있으므로 나름대로 아빠가 무엇인가 대책을 세워야 했습니다. 나무라거나 억지로 몸을 붙잡게 되면, 아이가 긴장하게 되고 딸꾹질이 더 심해질 것은 자명하므로.... 그때 제가 했던 방법은 이발소 소파에 굴러다니는 만화책을 보여주는 것이었답니다. 소위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주는 것이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꽝스러운 장면입니다. 아이와 이발사 아저씨를 앞에 두고 만화책을 들고 서서 아이에게 보여주고 있는 아빠의 모습. 상상해보십시오.)

아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심한 정도는 다소 줄었지만..... 이발소에만 가면 하는 딸꾹질 행사는 계속 반복되었고 만화요법도 물론 계속되었습니다.

큰애가 초등학교 1학년 다니는 동안 저의 연수관계로 떨어져 있다 귀국해보니, 아들의 이발소 딸꾹질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이것이 이발소와 딸꾹질 이야기의 끝입니다.

요즈음에는 가까운 이발소가 없어서 아이들이 미장원에 다니기 때문에, 주말이면 아이를 데리고 같이 이발하러 다니는 작은 즐거움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2001/06/05)

- [보너스] 또 다른 딸꾹질 에피소드 -

의사로서 초년병인 인턴시절 딸꾹질에 관한 환자 한분이 생각납니다. 신경외과에 입원한 환자였습니다. 의식은 없었고 마치 식물인간 비슷한 상태였는데 딸꾹질이 자주 생기는 분이었습니다. 전임 인턴으로부터 그 환자는 다른 방법보다는 약솜을 핀셋으로 집어서 목젖을 자극하면 좋아진다는 인계인수를 받고 일주일 여 신경외과에 근무하는 동안 몇 번 불려가서 핀셋으로 해결을 하곤 했습니다.

신경외과를 마치고 다른 과로 옮겨서 근무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신경외과 병동에서 저를 찾는 방송을 들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알아보니 그 환자분의 딸꾹질 처치를 해달라는 것이었는데... "무슨 소리냐, 담당의사 놔두고 다른 과 뛰고 있는 사람을 부르면 곤란하다..." 정도로 이의 제기를 했었습니다. 사연을 알고 보니 다른 몇 사람이 똑같은 처치를 했는데도 딸꾹질이 계속된다는 것, 그래서 보호자가 저를 불러주기를 요청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특별한 기술이나 재주가 있던 것은 아니지만, 시간 나는 대로 달려가 보니 보호자가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핀셋을 사용하기 전에 환자의 팔을 다독이며 말을 해주는 것이(비록 의식이 없지만) 효과가 있는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처치 아닌 처치를 해서 딸꾹질이 멎고 난 후, 후임자들에게 다음의 사항을 인계해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딸꾹질 때문에 핀셋을 목에 집어넣겠습니다, 조금 불편할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 있으면 딸꾹질이 멎을 것입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라고 말해주고 나서 핀셋을 사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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