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choi.pe.kr 배너

제 머리 깎기

최 영 childpsy@drchoi.pe.kr

엄격한 아빠들을 위한 변명


저는 진료현장에서 환자와 보호자에게 다소는 엄격한 의사라고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점도 있지만, 환자 스스로의 자율적 판단에 어느 정도 제한이 있는 정신과의 특성 때문에, 이 엄격함이 환자의 진료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이 홈페이지 상담실에서 신상정보를 밝히지 않거나 상담안내문의 기준을 지키지 않으면 도움말을 안해주며, 게시판에 올려진 광고성 글, 근거없는 비방, 또는 명예훼손 여지가 있는 글은 가차 없이 삭제하는 등.... 조금은 까다롭기 때문에, 엄격한 홈페이지 운영자에도 해당될 것입니다.

교수로서도 엄격한 편입니다. 의과대학생이나 정신과 레지던트들에게도 교육과정에서 일정 수준 이상을 지식과 노력을 기대하고 요구하기 때문에, 과거에 superego(초자아)라는 별명을 얻었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현재는 그렇지 못합니다.) 초자아(超自我)란 인간이 추구해야할 가치 기준이나 이상적인 모습을 제시하기도 하며, 자기자신을 관찰하고 평가하여 비판하는 마음의 구조(이드-자아-초자아) 중 하나입니다.

저는 엄격한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아니군요. 두 아이들이 아직은 저를 "아빠"라고 부르기 때문에 "엄격한 아빠"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아빠의 역할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자신의 정자를 제공해서 자녀에게 유전자를 물려주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선조로서의 역할이지요. 다음은 공급자로서의 역할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 현대사회에서는 돈으로 대표되는 자원의 공급을 해주는 경제적인 역할은, 대부분 아빠의 몫입니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일부는 엄마가 떠맡게 되었으며, 저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외부의 공격이나 해로운 환경으로부터 가정을 지켜주고 아이의 생명과 안녕을 지켜주는 보호자로서의 역할도 아빠가 할 일입니다.

키워주는 양육자로서의 역할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엄마보다는 생물학적인 한계때문에 다소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는 것도 아빠가 해 줄 일입니다. 다양한 사회생활의 기술을 가르치고 모범적인 행동을 통해 가치관을 전달해주는 일종의 모델로서의 역할도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빠는 권위의 상징이며 훈육자로서의 역할도 해야 합니다. 특히 이 훈육자로서의 역할이 아이들의 초자아 형성에 중요합니다. 프로이트는 자녀의 눈에 비친 부모의 모습이 아이들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어서 초자아가 형성된다고 말했습니다.

유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엄부-자모 (嚴父-慈母) 즉, 엄격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를 이상적인 부모의 모습으로 간주해온 것으로 압니다. 제가 가부장 제도나 유교적 전통의 옹호자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설명한 아이들의 초자아 형성을 위해서는, 적어도 엄부-자모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저의 타고난 성격도 일조를 했을 것입니다만... 환아들을 진료하면서 거꾸로 된 경우를 워낙 많이 보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진료과정에서 경험한 소위 "문제" 아빠들의 예를 몇가지 들어보겠습니다.

자녀양육에 대한 모든 것을 부인에게 미루고 소위 "신경 끄고" 사는 아빠. 저녁 늦게 술 먹고 귀가해서는 같이 놀자며 잠자는 아이들을 깨우는 아빠. 가끔씩만 아이를 보기 때문에 문제행동도 다 받아들여 주어서, 아이를 응석받이로 만들어버리는 아빠. 집에 월급봉투 갔다 주고 잠만 자고 나가는 "하숙생" 아빠. 그러다가 아이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엄마를 비난하며 "도대체 집구석에서 뭐를 했길래 아이가 저 모양이 되었느냐?"라고 책임을 떠넘기는 아빠.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를 달랜다며, 하루 학교를 가면 날마다 만원씩 아이에게 주던 아빠. 엄마 앞에서 주눅들어서 어깨를 펴지 못하던 자신감 없는 아빠.....

최근 들어 전통적 의미의 아버지 상(像)이 가졌던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가장으로서의 권위만 내세우고, 훈계하고 나무라기만 하는 아버지도 해롭습니다. 그래서 민주적인 아버지, 대화하는 아버지, 아이들과 놀아주는 아버지가 강조되고 있을 것입니다만.....

저는 아버지로서의 "권위"의 추락, 상실, 그리고 포기야말로 해로운 아버지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믿습니다. 관심 없는 아빠, 허용적이고 받아들여주기만 하는 아빠가 되기 보다.... 차라리 엄격한 아빠가 좋습니다. 아빠의 역할이 아이들의 초자아 형성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엄격하면서도 좋은 아빠이기 위해서는 다음의 한자성어를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 知子莫如父 지자막여부 - 한비자(韓非子) 십과편(十過篇)]

    자식에 대해 친아버지 이상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뜻.

자녀에 관심을 가지고 놀아주고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야 자식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식에 대해 알아야.... 제대로(?) 된 엄격한 아빠가 될 수 있습니다.

저도 제대로 된 아빠가 되려고 노력만(!) 하고 있는 중입니다. (2001/11/27)

이전 - 다음
HOME - 제머리깍기 목록 - 방명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