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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머리 깎기

최 영 childpsy@drchoi.pe.kr

[편지] 아빠가 아들에게 (1) 사회주의에 대하여


아들아.

아빠는 지금 서울에 올라가는 버스 안에 있다. 정부의 잘못된 의료정책에 항의하는 의사들의 전국집회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다.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온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깊은 새벽잠에 빠진 너의 모습을 내려다보기만 하고 아빠는 집을 나섰단다.

아빠는 지난 밤 늦게 잠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벽 세시에 저절로 잠을 깼다. 그 시간에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알람시계를 맞추어 놓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빠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가는 날 그랬던 것을 제외하고는, 흔치 않은 일이란다. 잠에 깨어서 문득.... 너와 네 동생에게 아빠로서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았단다.

아빠들이 아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아빠는 물질적으로 네게 물려줄 것은 별로 없지만, 꼭 해주고 싶은 일은 몇 가지가 있다. 네가 신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네가 가진 능력과 장점을 찾아내서 나중에 네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아빠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빠가 살아가면서 생각하고 느꼈던 것을 전달해주는 것도 아빠로서 해야할 일이기에,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서.... 이제부터는 네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편지 형식으로 써보기로 마음먹었단다.

사회주의에 대하여

아들아.

만약 학교에서 다음과 같은 일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한번 같이 생각 해보자. 물론 아빠의 머리 속에서만 벌어진 가상의 상황이다. 네가 학교에서 영어문법 시간에 배웠을 "If...."가 글의 맨 처음에 나온다고 생각해보자.

    어느 날 네가 다니는 학교 교장 선생님이 오늘부터 모든 학생에게 90점 이상의 점수를 주고, 학급이나 학년별 석차는 아예 매기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많은 학생들이 시험에 대한 부담이 지나쳐서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국-영-수로 대표되는 공부보다는 예술, 체육, 봉사활동 등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교육이 '참된 교육'이라는 소신이 이런 결정을 내린 동기라고 말씀하셨다. 많은 아이들이 교장선생님의 결정에 손뼉을 치고 환호를 했다.

    그 이후 네가 다니는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서, 그리고 수행평가에서 90점 이상을 받았다. 석차가 없어진 것은 물론이다. 평균 90점 이상의 성적표를 받아본 많은 부모님들도 흐뭇해했다. 시험과 입시라는 스트레스에서, 그리고 과외와 학원이라는 굴레로부터 학생들을 해방시켜준 훌륭한 학교라는 소개가 신문과 TV에 크게 보도되었다.

이런 가상의 상황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주렴. 이것이 논술시험의 문제라면... 너는 뭐라고 네 의견을 쓰겠니? 이런 교장선생님의 결정과 학교의 방침이 "평등"하고 "공평"한 것일까? 진정으로 너희들을 공부와 시험이라는 굴레에서 해방시켜준 것일까?

아빠라면 반대한다는 대답을 쓸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도, 또는 대충 안 해도 똑 같은 성적이 나온다면, 아빠라도 더 이상 공부하지 않겠다. 이게 실제 상황이라면, 모든 학생들이 더 이상 공부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특히 지금까지 열심히 했던 아이들일수록 더 할 것이다.

왜 그렇게 될까?

대부분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싶은 "동기"가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아빠는 생각한다. 농부가 가을에 추수하는 보람이 없다면, 특히 열심히 일하거나 일하지 않거나 간에 똑 같은 양의 추수를 한다면... 농부는 더 이상 열심히 일하고 싶은 동기가 없어질 것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공부한 만큼의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려는 "동기"가 생기는 것이다. 이 "동기"야말로 아빠가 너와 네 동생에게, 그리고 아빠가 치료하는 청소년들에게 가장 심어주고 싶어하는 덕목 중 하나란다.

"사회주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지? 알기 쉽게 설명하기에는 아빠가 가진 지식이 부족하지만, "자본주의"나 "개인주의"의 반대말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아빠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개인이 소유하는 것과 정반대다)와 사회적 관리(역시 개인이 관리하는 것과 반대다)라는 수단을 통해 "자유", "평등"과 "사회정의"를 실현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상'을 사회주의라고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농장이나 공장을 사회 또는 국가가 소유하고 그 생산과정을 사회나 국가가 관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농산물과 공산물을 공평하게 먹고 나누어 가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단다.

치약을 많은 사람들이 값싸게 살 수 있게 만들기 위해, 치약공장을 개인이 가지지 못하게 하고 국가에서 관리하면서 낮은 가격을 매긴다면.... 많은 사람들이 당장은 값싼 치약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치약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열심히 치약을 만들던 그렇지 않던 간에 어차피 받는 월급은 마찬가지일 것이므로, 더 이상 열심히 일하지 않게 된다. 질 좋은 치약을 만들어 봐야 공장에는 이득 될 것이 없으므로 더 이상 새로운 치약을 개발할 필요도 없게 된다. 그 결과 몇 년 후나 몇 십 년 후가 지나면 그 나라에는 치약이 부족해서 사람들이 소금으로 이를 닦는 일이 벌어지고 말 것이다. 아니면 비싼 돈을 들여서 외국에서 치약을 수입해오고, 힘을 가진 몇몇 소수의 사람만이 그 귀한 치약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다 "동기"가 없어지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아빠는 생각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라고 의문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로 지난 20세기의 공산주의 사회에서 벌어졌던 일이란다.

그래서 아빠는 사회주의를 싫어한다. "결과"의 평등은 피땀 흘려 노력하고자하는 사람들의 "동기"를 없애고, 결국 사회 전체의 퇴보를 가져와서.... 요즈음 신문에 자주 나오는 단어로 전 국민의 "하향 평준화"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공부하지 않으려 해서 학생들의 학업성취 수준이 떨어지는 것, 치약의 부족해서 소금으로 이를 닦게 되는 것이 바로 "하향 평준화"란다.

아빠의 직업은 의사다. 그리고 병을 잘 치료하는 것이 의사의 본분이다. 너라면 아팠을 때... 어떤 치료를 받았으면 좋겠느냐고 물어보고 싶다. 질과 수준이 낮은 치료(값이 쌀 수밖에 없다)와 수준 높고 양질의 치료(비쌀 수밖에 없다)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겠느냐?

우리 나라에서는 요즈음 양질의 치료(예: 비싼 약, 최신 기술의 검사나 수술)를 못하게 하고 있다고 말하면 네가 "아빠,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라고 되물어 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의사에게도 아빠가 앞에서 설명한 사회주의가 강요되고 있단다. "의료사회주의"라고 부른다. 전 국민에게 "평등한 치료"를 해주라는 것이다. "평등"이라는 말이 다시 등장했구나.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에서는 10년, 20년 동안 많은 공부를 했고, 많은 경험을 쌓은 외과 의사의 수술비용과 이제 방금 면허증을 딴 의사가 하는 수술비가 같아야 한다. 법으로 정해져 있단다. 똑 같다는 점에서는 일견 공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치약은 얼마에 팔아야 되고, 시험점수는 몇 점을 주어야 한다고 정하는 것과 꼭 같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면 치약이 생산이 부족하게되고, 시험이 없는 학교의 학생들이 공부를 안 하는 것처럼... 이래서는 어떤 외과 의사도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지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수술하는 기술의 질이 떨어질 것은 뻔한 일이고, 그 결과 어려운 수술을 할 수 있는 실력있는 의사들은 이 땅에서 없어지고 말 것이다. 일부 힘있는 사람들과 돈 많은 사람들은 외국으로 나갈 것이며(지금도 나가고 있다!), 돈 없고 힘없는 환자들은 결국 고통받고 죽어갈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점에서 "사회주의"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아빠는 "결과의 평등"보다는 "기회의 평등"이 주어지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은 보다 좋은 점수와 성적을 받는 것, 질 좋은 치약을 만들어 내는 공장이 좀더 많은 이익을 얻고 열심히 일한 공장 직원들이 정당한 월급을 받는 것, 좋은 치료를 하는 의사가 보다 많은 보상을 받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평등"이다.

아빠는 네가 자라서 살아갈 미래의 세상이 네게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해주고, 노력의 결과에 따라 진정한 "기회의 평등"과 "자유"가 주어지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아빠는 힘닿는 대로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아빠가 일요일의 달콤한 아침잠을 설쳐가며... 지금 서울로 올라가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란다. 아빠는 힘 닿는데 까지 싸울 것이다.

버스가 휴게실에 도착했다. 더 이상 글을 쓰기 힘들겠구나. 기회 닿는 대로 편지를 계속 써내려 갈 것이다.

2002년 1월 27일

아빠가 버스 안에서

추신 : 아빠가 집에 도착할 무렵이면 TV 뉴스에서 또 집단이기주의니 제 밥그릇 챙기기 어쩌고 하면서.... 오늘 아빠가 참석하는 집회를 매도할지도 모르겠다. 다음 번에는 신문이나 TV 뉴스를 보는 법에 대한 아빠의 생각을 적어보고 싶다. (2002/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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