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천년, 변치 않을 가정의 중요성

전남의대 정신과 / 전남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 정신건강클리닉
최 영


2,000년의 새로운 태양이 떠오른다. '밀레니엄', '세기말', 'Y2K' 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닐 만큼 우리 앞에 펼쳐질 새로운 천년에 대한 활기찬 희망과 막연한 불안이 동시에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

공상과학 영화나 미래학자들의 전문가적 견해를 참조하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다가올 몇 가지 변화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개인주의의 만연이다. 국가, 민족, 지역사회 등 집단보다 나를 중요시하는 풍조는 이미 우리사회를 풍미하고 있다. 남과의 직접적인 만남과 감정 교류가 줄어들 것이다. 상대방과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서도 사이버 공간에서 만남이 이루어지며, 재택 근무의 활성화로 이제 직장에서의 대인관계마저 줄어들게 된다. 백화점 세일기간 동안의 북새통이 없어지고 모든 물건을 집안에서 쇼핑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심지어 섹스마저도 디지털 화된 기계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1998년 36만 7천 쌍이 결혼하고 12만 4천 쌍이 이혼해서 우리 나라의 이혼율이 30%가 넘었다. 1985년 5.6%이던 이혼율이 13년만에 5∼6배나 높아졌다. 미국의 이혼율 50%를 따라잡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한다. 그래서 새 천년에는 결혼과 가정의 의미가 매우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는 학자도 있다.

하지만, 가정의 기능과 역할은 선사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결코 그 본질이 변화하지 않았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페나테스는 가정의 안녕과 번영을 지켜주는 신의 이름이다. 페나테스란 말은 식료품을 넣어두는 선반에서 나온 것이다. 선반이 없으면 식료품을 차곡차곡 저장할 수 없었듯이, 가정이 없는 우리는 생각할 수 없다. 필자는 미래 첨단과학의 시대에서도 가족 관계의 핵심은 끝까지 남아 있을 것이라고 본다. 사랑이 마지막 우리의 보루라는 것이다.

심리학자 Maslow는 인간의 욕구체계를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개념화하였다.

가장 하위의 체계로서 배고픔과 갈증을 해결하려는 생존을 위한 생리적인 욕구가 있다. 좋은 음식, 좋은 옷, 좋은 집.... 현재에도 이런 생리적인 욕구는 꼭 가정이 아니더라도 충족이 가능하므로, 미래에도 가정이 이런 욕구의 충족을 위해서 중요한 가치를 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생리적 욕구가 일단 충족되면, 자신이 처한 위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안전에 대한 욕구가 생긴다. 며칠간의 여행을 마치고, 혹은 출장 끝에, 또는 방학을 맞아 자기 집 현관 문을 들어서면서 느끼는 포근하고 편안한 느낌, 그리고 해방감... 이 안전의 욕구가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가정은 일상생활에서 겪는 부담이나 긴장을 풀어준다. 새 천년에도 우리는 이런 안전한 곳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 안전함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 사귀고 집단에 소속되고자 하는 욕구가 발생한다. 가정은 대인관계를 맺고 소속감을 주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다. 가정 안에서 대화하고 관계를 맺어 나가는 안정적인 경험은 다음 단계를 위해 필수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 집'아닌 '우리 집'라는 단어를 계속 사용할 것이다.

그 소속감을 바탕으로 남에게 자신을 인정받고 스스로가 자부심을 느끼려는 욕구가 생긴다. '칭찬합시다'라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 개개인이 가진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를 자극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본다. 멋진 남편과 아내, 훌륭한 부모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곳, 그곳이 가정이다. 새 천년에도 변함없이 남편에게서, 아내에게서, 그리고 부모로부터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이런 소속감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자신의 잠재력을 실천하고 자아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동기가 생긴다.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비중을 두는 가치관은 자신의 성취감이다. 미래에도 변함없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허공에 집을 지을 수 없듯이, 가정을 팽개치고 다른 가족 구성원의 소망과 바램을 나 몰라 해서는 진정한 자아 성취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인간에게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환경을 어머니의 자궁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자궁은 인간생명의 탄생과 유지를 위한 핵심이다. 새 천년에도 가정은 여전히 우리 인간의 자궁일 수밖에 없다.

이제 당신과 배우자, 그리고 자녀의 건강한 자아 실현을 위해서, 우리 모두 가정과 가족 관계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고 잘 가꾸어 나가야 할 때다. (국민생명 사보 2000년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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