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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최의 휴먼 탐구

최 영 childpsy@drchoi.pe.kr

사월의 노래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로 시작하는 ‘사월의 노래’를 아십니까? 중년이 지난 분들도 학창 시절 한번쯤은 불러보았을 이 가곡은 시인 박목월 님의 글에 작곡가 김순애 님이 곡을 붙인 것입니다. 제가 대학시절, 목련이 한창이던 봄날 캠퍼스를 거닐며 즐겨 듣던 노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가 된 이후에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자살’이란 단어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문호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주인공 베르테르는 연인 로테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당시 이 소설은 유럽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켜서 요즘 말로 베스트셀러가 됐고, 소설 속의 베르테르처럼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이 사건에서 연유해 자신이 모델로 삼고 있던 사람이나 영향력 있는 인물이 자살하거나 죽었을 경우, 그 사람과 스스로를 동일시해서 자살 시도를 따라하는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라고 부릅니다.

4월 들어 며칠 동안 진료실에서 만나는 몇몇 분들이 자살에 대한 생각을 연달아 언급했었습니다. 면담 과정에서 4월의 첫날 발생한 어떤 대학교 이사장의 투신자살 뉴스가 자살에 대한 생각의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그동안 재벌 회장이나 연예인의 자살 사건이 신문 방송의 사회면을 장식하고 나면 흔히 진료실 안에서 벌어져 왔던, 일종의 베르테르 효과로 이해되는 현상입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는 20년 동안의 자살에 관한 자료를 연구해 유명인의 자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 자살률이 껑충 뛰었음을 밝혀냈습니다. 마릴린 먼로가 사망한 다음에는 일시적으로 미국인의 자살이 12% 증가했다고 합니다. 어떤 연구는 유명 인사의 자살 보도가 있게 되면 자살이 평소의 14.3배로 늘어났다고까지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살은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언론에서 자살 사건에 관해 흥미 위주로 다루어서는 곤란합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4월은 잔인한 달’인가 봅니다. (200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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