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choi.pe.kr 배너

Dr. 최의 휴먼 탐구

최 영 childpsy@drchoi.pe.kr

분노의 김밥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는 기아와 질병, 그리고 착취에 의해 꿈과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겨버린 미국 빈민들의 삶을 묘사한 노벨상 수상작가 존 스타인벡의 소설 제목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부딪친 농민과 노동자들의 좌절, 그리고 그 좌절의 결과로 발생한 분노를 담아낸 작품입니다. 같은 이름으로 영화화되었던 적도 있습니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설명하는 이론 중에 ‘인지이론’이 있습니다. 이 ‘인지이론’에서는 주변에 발생한 사건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당사자가 경험하는 감정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사건을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불안해집니다.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소유물, 체면, 그리고 소중한 대인관계를 빼앗긴다고 여기면 우울한 감정에 사로잡힙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된 행동이 자신에게 해를 끼쳤거나 앞으로 끼칠 것이라고 판단되면, 분노가 치밉니다.

상대방이 고의로 그런 행동을 했을 때, 악의를 가졌다고 느낄 때, 벌어진 일이 이치에 맞지 않고 자신에 대한 대접이 편파적일 때, 그런 사건을 일으킨 상대방이 평소에 모범적이지 못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이었을 때 특히 화가 나게 됩니다.

얼마 전,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마련해놓은 김밥을 아버지가 먹어버린 것을 따지던 고3 아들이, 흉기로 아버지를 9군데나 찔러 살해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제한된 정보만으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왜 그리고 어떻게 발생했는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런 극단적인 행동의 바탕에 분노가 깔려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김밥 하나 때문에 어떻게 그런 잔인한 행동을 할 수 있느냐는 직설적인 비난을 하기 이전에, 이 사건의 배후에는 한 줄의 김밥이 아닌, 아들의 ‘마음의 눈’에 비친 아빠의 부정적인 모습이 있을지도 모름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제2, 제3의 “분노의 김밥” 사건이 재발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04/05/12)

HOME - 휴먼탐구 목록 - 방명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