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 정신건강 클리닉 홈페이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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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를 열면서 ]

저는 의료인이지 컴퓨터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래서 기술적으로는 매우 초라한 홈페이지임을 스스로 느낍니다. 앞으로 방향설정을 위해 제 홈페이지를 만들게 된 경과를 제 스스로 정리해보고 싶어서 이 글을 씁니다.

개인적으로 컴을 처음 소유한 것은 1987년 크리스마스 무렵입니다. 당시에 춘천에 있는 군 병원에서 근무하던 도중이었는데 거금 100만원 정도를 들여서 세운상가에서 조립한 XT를 구입하였습니다. 서울에서 춘천까지의 운송경비까지 물론 포함한 금액이죠. 당시 군의관 대위 월급이 약 30만원 쯤 하던 시절이니까 정말 거금은 거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컴에는 하드 디스크는 물론 없었고요.... 플로피 디스크만 장착된 조립 PC였는데 640K의 메모리를 자랑(?)하는 최신 기종이었답니다. 한글이 OS에서 구현되지 못해서 영문 워드프로세서만 구차하게 플로피에서 구현했으며, BASIC 따위로 그림도 그리고 도레미파... 음계를 소리나게 하고선 매우 즐거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운드카드가 없었지만 제 귀에는 아주 기막힌 악기의 연주쯤으로 들렸었습니다. 밤늦게 까지 컴퓨터를 가지고 놀다가 혼(?)도 자주 나곤 했던... 정말 과거의 일이군요. 그 무렵 아래아 한글의 원형도 출현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그 당시는 무단 복제를 당당하게 하던 때지요.

병원에 환자로 입원해 있던 컴을 잘 다루는 사병을 구슬려서 춘천병원의 군의관들이 단체로 컴퓨터에 관한 강의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배운다는 핑계로 퇴원을 밀쳐주면서 말입니다. 소위 말하는 나이롱(?) 환자였지만요.... 현재의 군 병원에는 물론 그런 환자가 없겠지요. format이 어쩌고 diskcopy가 어쩌고 하면서 하나의 철자만 잘못 입력해도 실행이 안되어서 진땀을 빼고 막막해서 담배만 꼬나 물던 일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 국군 광주병원으로 옮겼습니다. DOS 상에서 한글을 구현하는 도깨비 류의 프로그램이 기억에 남는군요. 특별하게 컴퓨터를 가지고 창조적인 일을 한 기억은 없습니다. 게임이나 즐기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286급을 구입했습니다. 하드 디스크가 달리고.... 뭔가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던 때랍니다. 아래아 한글로 주로 강의안을 만들고.... 통계처리를 위한 database III나 lotus와 같은 spreadsheet를 가지고 낑낑 대던 기억도 있군요. dot printer도 한 대 구입하고... 원시적이었지만 비교적 창조적인 일에 컴을 사용하기 시작했답니다.

이 정도 읽으시면 많은 분들이 떠나려는 마음이 생기실 것 같군요.

어찌어찌 해서 386은 건너뛰고 486DX로 바꾸었는데, 당시 대학에 전산화, 혹은 정보화 바람이 불어서 대학에서 단체로 구입한 486SX를 한 대 제 연구실에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그 무렵 윈도우3.0, 3.1이 나와서 MS-DOS에 익숙한 저에게 골탕을 많이 먹이더군요. 그 무렵 처음 나온 Inkjet printer도 하나 샀는데.... 유지비가 엄청나서... 썩혀 버리고... 미국 연수 기간에는 486 흑백 스크린의 Toshiba의 노트북(일제를 사고 싶어서 산 것은 절대 아니고... 제일 쌌다는 것이 유일한 이유지요)을 이용했는데.... 그다지 창조적인 일에는 써 먹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97년-98년사이에 인터넷, 홈페이지, 이메일 바람이 불었는데 도태된 상태에서 무기력하게 지내다가 성질 급하게 다시 거금을 들여서 현재의 세레론(300Mz, 64Mb)로 바꾼 것이 1998년 10월 쯤입니다. 그러다가 책 한 권 사 들고 일주일 만에 뚝딱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저의 대학 계정에 올린 것이 1998년 11월 1일입니다. 무모하게 올려놓고는 감당을 못하다가 내과의사인 한상율 원장님의 자극과 산부인과 오성택 교수님의 도움으로 99년 3월 초에 방명록과 상담실을 제 계정에 설치하면서 첫 화면을 프레임을 이용한 전면 보수작업을 했습니다. perl을 몰라서 낑낑... "아는 것이 없으면 머리가 아프다..."를 실감했답니다. 외부에 연결된 카운터는 느려 빠져서 빼 버렸기 때문에 사실 방문객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지냈습니다. 네 달여 만에 상담 올려진 것이 150개 정도니까... 그 정도면 적당하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그러던 중 아주 우연하게 재미로 응모를 했었는데 WebPD라는 웹 호스팅 회사에서 30Mb 계정을 무료 제공한다기에 덜컥 홈페이지를 넓히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오늘에 이르렀는데... 앞으로는 저도 잘 모릅니다. 제 원래 계정은 대학에서 준 것이니까 의과대학생이나 의료인을 위한 전문적인 공간으로 활용해볼까 합니다.

제가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이유는? 제가 아는 것을 가능한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 그것 하나 뿐이랍니다.

지리멸렬한 글... 읽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1999/7/13)

[상담실 운영과정에서의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한 상담을 시작한 것이 99년 3월부터니까 어느덧 10개월이 지났습니다. 2000년 1월 13일 현재까지 약 430건 정도의 상담이 게시되어 나름대로 답을 드렸습니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을 수도 있는 숫자로군요.

처음에는 사이버 공간에 대한 호기심 반, 그리고 정신과, 특히 소아청소년 정신과에 대해 일반인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이 반...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독특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행동들에 대한 어쩌면 학문적일 수도 있는 동기도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최소한의 목적을 이루고 있는 중이라고 자위합니다만, 병원이나 의과대학에서 부여된 업무의 사이 사이에 시간을 쪼개어서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올라온 상담에 대한 답을 해야 했기에.... 여러 가지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만 두는 것이 어떨까, 대학 교수가 무슨 이득이 있다고 이런 일을 하고 있는가? 등의 생각이 머리를 스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런 일에 대한 물질적인 보상은 전혀 없습니다. 다행히 대학 구성원에게 제공되는 LAN을 이용해서 접속요금이 없이 인터넷에 접속이 가능하고, 무료로 안정적인 계정을 제공해주는 웹 호스팅 회사가 있었기에 눈에 보이게 들어가는 금전적 투자는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이 상담실이 과연 무슨 보상이 주어지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의과대학 교수가 해야 하는 일은 교육, 진료, 연구로 크게 나누어집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저는 상담실 운영을 교육의 한 측면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과대학생만의 교육으로는 부족한... 일반인을 위한 교육의 공간으로서 이 상담실을 생각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공개 상담실의 운영을 저는 고집하고 있습니다. 아... 정신과가 이런 것이구나...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해야겠구나.... 어떤 것을 병이라고 하는구나... 정신과 약은 이럴 때 쓰는 구나...를 일반인들도 알게 해서 정신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덜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소박한 소망입니다.

그리고 덧 붙여서 이 상담실의 상담 내용을 모아서 앞으로의 정신과 영역에서의 사이버 상담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기본 자료로도 사용할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상담실이 나아갈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저의 개인 사정에 따라서 문을 닫을 수도 있고, 대화방과 같은 방식이나 동영상을 이용한 실시간 상담실로 발전해 나갈 수도 있겠지만.... 공이 어디로 튈 지는 지켜 봐야겠지요.....(200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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