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보는 방향대로 아들과 딸을 감별하라

최 영 childpsy@drchoi.pe.kr


이 글은 "사람은 생긴 대로 병에 걸리게 마련입니다. 얼굴형·눈·코·입·귀·피부색 등 나만의 독특한 생김새, 성격, 생활방식에 따라 각기 다른 병이 생기는 겁니다. 형상의학이란 사람의 겉모습과 행동 등을 통해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학입니다.”라는 소위 형상의학의 주장에 대한 제 의견입니다.

  • 관련 기사: ‘형상의학’ 가라사대 “생긴 대로 病 온다” [주간동아  2003 년 01 월 23 일 (369 호)  78 ~ 80 쪽] => 원문보기

[프롤로그] 태아 성 감별법

    아이 밴 여인을 뒤에서 "아무개 댁! 아무개 엄마!"라고 불러서 오른쪽으로 돌아보면 딸이요, 왼쪽으로 돌아보면 아들이다.

인간은 분류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무렵이 되면 모양, 색, 용도 등의 다양한 기준에 따라 물건들을 분류한다. 남자와 여자, 가족과 가족이 아닌 사람.. 등으로 사람도 분류하기 시작한다. 이런 분류는 어른들의 실생활에서도 많이 이루어진다. 출신지역에 따라, 출신 학교에 따라, 소속된 정당이나 집단에 따라 사람들을 분류하고, 그 분류에 따라 대접을 달리하기도 한다.

분류는 필요하다.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인간은 A, B, AB, O형, 그리고 Rh+, Rh-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분류는 병원에서 통상적으로 시행된다. 이 분류가 되어있지 않다면 수혈할 혈액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혈액형 분류는 필요하다.

의학의 영역에서 진단분류는 의사를 비롯한 여러 전문가들이 서로 효율적으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용어를 제공하고, 어떤 질환의 특징을 정의하며 그것이 다른 유사한 질환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이해하며, 궁극적으로 여러 가지 질환의 원인을 밝히고 효과적인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분류가 오남용 되어서는 안 된다.

요즘은 뜸해졌지만, 진료실에서 성격을 물어보는 질문에 "저는 O형인데요. O형은 이런 저런 성격이라면서요...."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혈액형과 성격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과연 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다른 것일까? 혈액형과 성격은 상관성이 입증되지 않았을 뿐더러, 혈액형은 혈액의 응고에 대한 분류이지 성격에 따른 분류가 절대 아니므로,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NO"이다. (관련 추천 글 => 혈액형에 따른 성격, 그 구라의 세계)

비슷한 경우도 많다. 말띠 여자는 드세고 뱀띠는 어떻다는 식의 동양에서의 띠의 개념, 전갈자리의 운명은 어떻다는 식의 서양의 점성술은 또 어떠한가? 태어난 연도와 성격 또는 운명과의 연관성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적은 전혀 없다.

드물지만 외모와 체형이 질병에 대한 힌트를 주는 경우도 있다.

필자는 소아청소년을 주로 진료하는 관계로 정신지체아를 자주 본다. 머리의 전후 지름이 짧고,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가 있고, 양쪽 눈시울 사이에 군살주름이 있으며, 코가 낮고, 혀가 크며 손과 발가락의 이상 등 외모적 특징이 있으면 다운 증후군을 의심해볼 수 있다. 서양에서는 이런 외모가 몽골 사람을 닮았다 하여 "몽골리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확실한 진단은 염색체 검사 후에 내려진다. 이처럼 신체적 특징이나 얼굴모양은 일부 유전 질환에서 진단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또 다른 경우도 있겠다.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커 진 환아들은 어떤 원인으로든 뇌 안의 압력이 높아져서 머리가 커지는 수두증이 와있을 가능성이 높다. 성인 남자가 복부 비만인 경우 고혈압, 당뇨, 심장병 등 소위 성인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달덩이 같이 동그란 얼굴에 들소의 등 모양(buffalo hump)을 가진 경우 호르몬계의 이상이나 스테로이드 과용으로 인한 쿠싱 증후군을 추정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외모적 특성으로 특정한 질병을 추정할 수 있지만 확진할 수는 결코 없다. 더욱이 외모적 특징으로 진단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극히 일부의 질병에 국한될 뿐이다.

얼굴은 삶의 거울이다.

얼굴은 그 사람의 삶의 거울(The face as the mirror of life)이라는 말이 있다. 또 얼굴은 마음의 창(The face as an expression field of the soul)이라는 말도 있다. 그 사람의 표정이나 분위기와 같은 비언어적 의사소통에 관심이 많은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그렇지만....

얼굴이 건강의 거울 또는 창(窓)이 될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서양에서도 얼굴의 외모로 건강이나 운명을 판단해보는 인상학(physiognomy)이라는 학문이 있었다. 동양에서의 관상학 또는 관상술에 비유될 수 있겠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론 시대 사람들의 기록에서도 나타나며 19세기 미국에서도 이 인상학이 풍미했었다고 한다.

골상학(phrenology)도 있다. 골상, 즉 뼈의 형태를 보고 건강뿐 아니라 범죄자도 알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뼈의 형태나 외모적 특징으로 범죄자를 판별하고 앞으로 또 범죄를 저지를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 자체에 대해 필자는 과학적인 측면에서 뿐 아니라,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본다.

1999년에 얼굴 모양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인으로 사망할 지를 예측할 수 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논문이 발표되었다[Int J Clin Pract 1999 Mar;53(2):140-1]. 종양 전문의, 혈액 전문의, 일반 의사, 그리고 카운슬러에게 혈관질병 또는 암 등으로 이미 사인이 알려져 있는 200명 남자의사의 사진을 보고 사인을 추정해보도록 했는데, 그 예측의 정확성은 우연히 나타날 수 있는 정도의 정확성을 넘어서지 못했다. 얼굴이 건강의 창이 되기 어렵다는 연구결과로 생각된다.

외모를 기준으로 한 분류를 통해 건강을 논하기 위한 전제조건들

1) 분류의 타당성(validity)이 있어야 한다.
분류 자체가 신체적인 건강이나 질병을 타당하게 분류하는 것이어야 한다. 혈액형과 성격의 경우에서처럼 혈액의 상호작용과 관련된 분류를 인간의 성격에 대한 분류에 이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2) 분류의 신뢰성(reliability)이 있어야 한다.
여러 사람이 동일인을 놓고 체형에 따라 분류를 했을 때 상당한 정도로 그 분류가 일치해야 마땅하다. 또 특정한 사람이 동일인을 상당시간이 지난 후 다시 분류했을 때도 그 분류가 일치해야 한다.

3) 분류된 유형과 특정 질병이나 건강상태와의 통계적인 상관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혈액형과 성격은 전혀 차원이 다른 상이한 변수이다. 이런 변수 사이에 연관관계가 입증되어야 비로소 혈액형과 성격에 관해 논할 수 있다. 체형이나 외모와 같은 소위 "형상"이라는 변수와 건강 또는 질병이라는 변수 사이의 상관관계가 입증되었는지 의문스럽다.

이런 몇 가지 관점에서... 형상의학 관련 단체에 회원이 몇 명이 가입되었으며 형상의학에 대한 전문가들의 관심이 높다고 홍보할 것이 아니라, 형상에 따른 분류의 타당성은 어떻고 신뢰성은 어느 정도며, 여러 전문가가 여러 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시행한 연구에서 분류된 체형과 체질에 따라 건강 상태가 어떠했다는 점들을 제시해야 마땅하다.

[에필로그]

    프롤로그에서 제시된 성 감별법은 확률이 어느 정도일까 생각해보자. 적어도 1/2에서는 남녀를 정확히 맞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1/2의 확률로 배속 아이의 성을 맞출 수 있다고 해서 이런 성감별법이 정확하고 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1/2 정도의 확률로 맞출 수 있음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아이 밴 여인을 뒤에서 "아무개 댁! 아무개 엄마!”하고 불러보면, 다음의 세가지로도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오른쪽으로 돌아보는 사람, 왼쪽으로 돌아보는 사람, 그리고 돌아보지 않는 사람... 오른쪽으로 돌아보면 딸이요, 왼쪽으로 돌아보면 아들이라면, 되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를 임신했다는 것인가?

- 처음 쓴 날 2003/02/14, 고쳐 쓴 날 2003/1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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