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만들어낸 장애, 꾀병 이야기

전남의대 정신과 / 전남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 정신건강클리닉
최 영


제가 군 병원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일입니다. 대개 4월 말 무렵이 되면 군의관들은 새 임지로 부임하게 됩니다. 바깥 날씨는 햇볕이 따사롭게 느껴지는 때이지만, 군대라는 환경 때문인지 두툼한 야전 잠바를 껴입고 근무하던 기억이 새롭군요.

4월 말 전역을 한 전임자로부터 인계 받은 환자가 있었습니다. 제가 부임하기 전에 이미 후송 와 있던 환자인데 편의상 김 일병이라고 호칭하겠습니다.

후송 온 주된 문제는 소위 "실어증"이었습니다. 말을 못한다는 것이지요. 한마디도 언어로는 표현하지 못하고 행동으로만 자신의 의사표현을 했었습니다. 병록지에 기록된 것에 따르면, 대학을 다니던 도중 군에 입대했는데, 훈련소에서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보통 사병이었습니다.

전방의 부대로 배치 받아서 생활하게 되었는데, 구타 사건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고참 병장이 괴롭혔던 모양인데,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의 환자는 고민만 하다가 밤중에 불려나가서 여러 군데를 다시 맞게 되는 상황에서 정신을 잃었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외상은 특별한 것이 없었지만, 깨어난 후로도 말을 전혀 하지 못해서 부내 안의 의무실을 거쳐서, 두군데 군병원 정신과에 입원되어 있다가 최종적으로 제가 부임한 곳으로 후송되었습니다.

발성 기관에 대한 이비인후과 검사나 신경 검사 등 신체적인 검사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으며, 글로는 자신의 의사를 잘 표현하였습니다. 병실 안의 입원 생활에서도 말 외에는 말귀도 다 알아먹고 특별한 이상 행동은 없었습니다.

군 병원의 특성 상 한 개인의 치료 문제보다는 전체 병동을 파악하고 제 자신이 새로운 부임지에 적응하느라 몇 주가 지났습니다. 한숨 돌릴 정도가 된 싯점에서 병실 입원 환자 개인의 상태 및 치료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를 자세히 하던 중... 김 일병이 눈에 띄었습니다.

병록지에 붙어있는 병명은 전환장애(conversion disorder)였습니다. 전환장애란 신경증의 하나로서 심리적인 불안이나 갈등을 신체적인 증상으로 바꾸어(그래서 전환이라고 하지요...) 표현하는 것입니다. 부부 싸움 끝에 손발에 마비가 오거나 경련을 하는 경우도 있으며, 감각이나 운동의 문제가 생깁니다.

꾀병과는 다르답니다. 꾀병이란 자신이 의식적으로 증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며, 전환 장애는 무의식적인 동기와 연관되어서 검사에는 이상이 없지만 실제로 자신은 감각 이상이나 마비를 경험하게 됩니다.

김일병의 경우에는 단순히 전환장애라고 보기에는 여러가지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간호장교와 위생병에게 면밀한 관찰을 부탁하고 개인적으로도 다른 병사보다는 자주 면담을 했습니다. 물론 저는 말을 하고 김일병은 글로 쓰는 일종의 필담이었지요... 대략적인 성장과정, 평소의 성격, 부대 안에서 발생했던 구타 사건의 개요 등 전반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저는 나름대로 현재는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고 있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미 수개월간 말을 안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리고 현재 병동에서 같이 생활하는 위생병이나 다른 환자들이 김일병이 말을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치료에 있어서 체면이나 자존심을 살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해서 나름대로 전략을 세웠습니다. 병동 안에 제가 특별한 어떤 방법을 써서 김일병을 치료하겠다는 소문을 내고, 1리터 수액, 몇 앰플의 진정제 등을 준비시키고는 김일병과 저는 단 둘이서 면담실에 마주 앉았습니다.

진지하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달래도 보고, 도와주려는 사람에게는 솔직히 말하지 않으면 심각한 불이익이 돌아올 수 있다는 협박(?)도 하면서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물론 필기구는 없앴고 말로 하는 것만 들어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말을 하더라도 특수한 치료를 해서 말을 하게 된 것이라는 체면을 살려주는 제 복안도 설명했고요.... 이런 나름대로의 팽팽한 실랑이가 30분 여.....

드디어 김 일병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구타당한 후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을 때 처음 느낀 감정은 자신을 때린 병장에 대한 적개심이었다고 했습니다. 죽이고 싶을 정도의 강력한 것이었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뭔가 말을 하고 싶은데 전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아, 말문이 막힌다는 것이 이것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답니다.

그런 상태에서 며칠.... 후송과 후송을 거치면서 어느 순간 자신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말을 하게되면 다시 부대로 돌아갈 것이고... 주위에서는 자신을 꾀병 피웠다며 따가운 시선을 보낼 것 같고... 처벌도 두렵고... 혹시 이러다가 제대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하게되었다고 합니다.

장시간의 대화 끝 무렵 김일병은 말했습니다. "군의관님, 이제는 편하게 말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처벌을 한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그리고 김일병은 병실로 돌아갔습니다.

그날 이후로 김일병은 병실 안에서 말로 의사표현을 잘 하게 되었습니다. 노래를 썩 잘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김일병은 자신의 원에 의해 부대로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김일병이 우렁찬 "충성" 소리와 함께 퇴원 신고를 하던 그날은.... 이미 두꺼운 야전 잠바를 벗어버리고 반팔 하복을 입기 시작한 어느 더운 여름날이었습니다.

(꾀병에 대한 정신과 의사들의 일차적 대책은 증상 때문에 본인이 얻게되는 이차적인 이득을 차단하고 증상 때문에 생겨나는 손해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www.DrChoi.pe.kr 토론게시판에 1999/8/23 올렸던 "김일병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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