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 의료사고, 의료과오

전남의대 정신과 / 전남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 정신건강클리닉
최 영


얼마 전 필자는 살인자 명단 공개라는 제목하에 담당의사 몇 명의 실명과 간호사 명단이 첫 화면에 적혀진 홈페이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구체적 상황이나 해당 병원의 의견을 알지 못하기에 뭐라 판단하기는 힘들지만, 아직 진상이나 책임소재에 대한 객관적인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와 간호사를 "살인자"라고 공개적으로 실명을 올리는 것에 대해 심각한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당 의료진의 과오나 과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의 대응은 명예훼손에 해당된다.)

또 어느 병원에 멀쩡히 걸어 들어 갔던 사람이 검사 또는 치료를 받은 후 사망했으므로, 해당 병원과 의사의 잘못을 네티즌에게 호소한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인터넷 사이트에서 흔히 접한다. 담당의사의 이름은 물론 사진까지 공개된 경우도 보았다. 이런 종류의 글에도 "살인", "인체실험" 식의 과격한 단어가 포함되기 십상이다. 글을 보고 흥분한 네티즌 들의 항의 때문에 해당 병원의 홈페이지는 초토화되기도 하며, 동일한 글이 퍼온 글 형태로 수많은 게시판에 반복되어 올려지곤 한다.

해당 가족의 항의나 농성 때문에 실제 진료에도 상당한 차질이 빚어졌을 것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고인의 시신과 함께 병원 구내에서 농성을 하기도 하며, 담당의사의 멱살을 잡는 정도를 넘어서 스토킹에 가까운 괴롭힘과 폭력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불시에 건강과 생명에 이상이 발생한 당사자나 가족의 심정이야 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억울하고 분하고 서운하고 원통하고.... 그래서 원인 규명을 바라고 당사자의 책임을 묻고 싶은 심정은 어느 누구나 가지게 된다. 의사 역시 환자로서 병원에서 치료받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런 심정은 의사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이런 저런 과정을 보고 들으면서,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의료에 관한 몇 가지 오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관련 내용을 다루는 신문과 방송의 보도를 볼라치면, 해당 기자나 PD 역시 의료분쟁이나 의료사고, 의료과오(과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느낀다.

앞에서 언급한 상황들은 "의료분쟁" 상태임이 분명하다. "의료분쟁"이란 환자나 보호자 측이 진단과 치료에 문제를 제기해서 분쟁화되는 것을 말한다. 분쟁은 의견 차이나 손익의 발생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인간사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집단과 집단 사이, 나라와 나라 사이에 분쟁은 역사 이래 계속되어 왔다. 의료의 과정이나 결과에 대해서도 역시 의견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런 "의료분쟁"이 곧 "의료사고"요 "의료과오(과실)"일까?

"의료사고"란 의료행위의 전 과정에서 발생되는 예기치 못한 불상사를 말한다. 예측할 수 있는 후유증 또는 예측할 수 있는 사망에 대해 환자나 보호자가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의를 제기한 경우라면, 꼭 예기치 못한 "의료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현대의학으로도 병과 죽음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거역할 수 없다. 의료행위의 대상이 되는 환자가 병원에 오기 이전에 대부분 이미 질병 상태이며. 의료행위 자체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치료를 하더라도 일부는 병의 경과가 악화되거나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인간에게 병의 악화나 사망 중 일정 부분은 피할 수 없으며, 이런 불행한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의료는 확률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많다. 이런 점에서 "의료분쟁"이 있다고 해서 꼭 "의료사고"는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의료사고"를 "의료과오"와 똑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의료과오"란 의료인이 의료행위를 함에 있어서 통상의 의료인이 기울여야 할 업무상의 필요에 의한 주의를 게을리 하여, 그 결과로 환자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주의를 충분히 기울이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예기치 못한 불상사가 발생하는 "의료사고"도 있다. 아무리 간단한 검사나 치료도 후유증이니 죽음을 초래할 확률은 0%가 결코 아니다.

이런 의료분쟁 과정에서 흔히 일어나는 오해들은 의료행위 자체의 특징에서 비롯되는 측면도 많다.

먼저, 의료행위는 그 자체가 인간의 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정 정도의 위험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검사, 약, 수술 모두 인체에 대한 일종의 침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하는 객관적인 위험성은 환자나 보호자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들은 비용을 지불하고 물건이나 서비스를 산다. 그 과정에서 물건에 하자가 있으면 교환을 한다. 일종의 채권-채무 관계다. 의료에서도 의사와 환자 사이에 일종의 채권-채무 관계가 성립된다. 하지만, 의료는 단순히 비용을 지불하고 물건을 사는 것과는 다르다. 의료에서의 채권-채무 관계는 병이 꼭 낫는다는 "결과"를 사는 것이 아니라, 질병에 대한 진단과 치료라는 "과정" 또는 "수단"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의료에서도 마치 백화점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식으로 "결과"에 대한 비용을 자신이 지불한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또한 의료행위는 의료법에 의해 정당한 이유없이 이를 거부하지 못한다. 아무리 심각한 환자라도 의사 입장에서는 일단 어떤 형식으로든 진단과 치료를 강요당한다. 즉, 강요당하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응급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치료를 해주지 않아도 분쟁이 생기고, 치료를 해주어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분쟁에 휩싸이게 된다.

"의료과오"에 대해서도 오해가 많다. 당시의 의학 수준, 의료제도, 시설이나 인력과 같은 의료환경, 환자의 특이 체질 등을 고려해서 의사가 할 일을 다했다면 그 결과가 좋지 않았더라도 의사에게 과오(과실)가 있다고 단정해서는 안된다. 물론, 의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의사의 과오나 과실은 엄연히 존재한다. 의사의 과오나 과실이 있었다면 형사적, 민사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잘못이 있다면 책임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 글을 통해 "의료분쟁"이 "의료사고"와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의료사고"가 있었다고 해서 "의료과오"가 있었다고 단정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법 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인지 법도 무시되기 십상인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무엇인가 잘못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전제하에 명예훼손과 폭력이 현실에서, 그리고 사이버 공간에서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는 현 세태는 염려스럽기만 하다. 불신을 조장하고 부추기는 사회 풍토는 고쳐져야만 하며, 합리적인 기준과 절차를 통해 의료분쟁은 해결되어야 한다.

하루 빨리 의료 분쟁과 관련된 제도와 법규를 정비해서, 환자와 의료인 모두 안심하고 진료받고 치료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기를 바란다.

- 2001/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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