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본과 생활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 전남대학교병원 정신과 소아청소년 정신건강클리닉
최 영


이 글의 제목은 "즐거운" 본과생활이다.

"아니, 즐겁다니요. 지긋지긋한 강의와 시험,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리는 재시험과 낙하산에의 스트레스를 받는 저희들에게 즐거운 본과생활이라니 농담하시는 겁니까?"라고 누군가는 항의를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나의 본과생활, 특히 본과 2학년, 1980년의 기억은 즐거운 것은 '전혀 아니올시다' 였으니까(휴교도 하고 시험대신 리포트로 성적이 나왔던 호랑이 거북선 피던 시절이었음).

누군가는 스트레스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를 억누르는 압박감이죠. 나는 그것을 나의 머리와 가슴, 온몸으로 느끼고 있어요. 모든 것이 나에게 다가오면서 나를 답답하게 누르고 있답니다." 그렇다. 여러분이 느끼는 강의와 시험에의 압박감이야말로 주요한 스트레스의 하나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여러분의 연인과의 열정적인 사랑도 맥박을 빠르게 하고, 심장을 요동 치게 하며, 숨을 답답하게 하고,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 것이다. 이 또한 분명한 스트레스의 하나이다. 이 열정의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사랑을 포기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지?

인간은 스트레스를 완전하게 피할 수는 없다. 특히 존엄한 생명을 다루는 학문에의 길로 들어선 여러분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필자는 스스로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시험감독을 하며 책상 위에 깨알같이 써있던 볼펜의 흔적들을 보면서, 강의 중에 드문드문 비어있는 자리들을 보면서, 의대 앞 복사가게의 번창을 지켜보며, 임상실습 나온 여러분의 선배들의 환자대하는 모습에서, 문득, 아니 자주로 답답함이 느껴지더란 것이다.

이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선배의 입장에서 몇 가지 즐거운 본과생활을 위한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 스트레스를 받아들여라. 강의와 시험의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한 여러 시도들이 있다. 술, 당구, 카드놀이, Hunting, 그리고 소위 땡땡이 등등. 물론 좋은 방법들이다. 하지만 일시적 회피는 영원한 도태라는 새로운 스트레스를 낳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멀리 보고 멀리 생각하라. 하루하루가 꽉 짜여진 시간표에, 쉴 사이 없이 머릿속으로 부어지는 지식과 정보들. "이것을 암기해야 재시험을 통과할텐데." "오늘 노트 한 권을 끝내야 장학금을 받을 텐데." 대신에, 이건 어떤가? "오늘의 충실함이 10년, 아니 20년 뒤에 마주칠 어느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믿음.
  • 놀 때는 철저하게 놀아라. 이런 친구가 있었다. 야유회를 가서도 다음 시험을 걱정한다. 즐거운 데이트 중에도 한쪽 어깨는 공부에 대한 부담에 짖눌려 있다(물론 90년대의 본과생에는 이런 사람이 없을 것이지만). 스트레스로 인한 고통이 자신의 인생을 파괴하지 않도록, 휴식은 정말 휴식일 수 있어야 한다.
  • 자신이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라. 누군가는 의대교육 제도의 비인간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선배들이 어떻고, CHONNOM대학이라 틀렸고. 그리고는 좌절한다. 70년대의 용어로는 헤매기도 한다. 어찌할 수 없는 일에 안달하는 것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하다(이런 발언은 보수주의와 타협주의의 산물일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 탓하지 마라. 우리는 자신의 실패의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린다. 정신과 공부는 열심히 했는데 최 영 선생이 탈 야마를 해서 재시험을 보게 되었고, 치료해도 좋아지지 않는 것은 환자 제 탓이고. 교과서대로 Projection은 가장 병적인 방어기제라는 것은 우리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이런 글은 보고 나서 바로 잊어버려라.

모두에게 즐거운 본과생활이 되기를 기원하며 이 글을 맺는다. (1992년도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2학년을 대상으로 하여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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