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와 관련된 오해를 풀어보자 (3) - 죽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살하지 않는다.

전남의대 정신과 / 전남대학교병원 정신과 소아청소년 정신건강클리닉
최 영


얼마 전 어떤 대학의 전 총장님이 아파트 고층에서 투신 자살했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가 있었다. 대학총장으로서 재임기간 동안에 어떤 종류의 문제가 있어서 구속되었다가, 신체적 질병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 후에 병보석 비슷한 조처를 받고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온 첫 날이었단다. 필자가 보도를 통해 들은 바로는 이미 죽고싶다는 말을 여러 명의 가족에게 했었고, 유서까지 써 놓았다고 하는데 급기야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옮겨 버린 것이다.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정신과 의사로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안타까움을 느끼는 이유 중에 하나는 적어도 그 분의 자살에 관한 한, 어느 정도 예방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몇 년전 자살 기도를 해서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의 보호자가 필자에게 이런 질문을 한적이 있다. "얼마 전에 죽고 싶다고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진짜 죽을 것 같으면 그런 말을 하고 자살하겠나 싶어서 그냥 무시했는데... 진짜 죽을려고 약을 먹어 버렸네요, 글쎄". 혹시 이런 생각 때문에 죽고싶다는 그 분의 유서나 말을 "설마....."라고 무시해 버린 것은 아닐까...

자살은 스스로를 죽이는 행동으로서 인간의 10대 사망원인 중의 하나다. 어느 자료에서 보면 지구상에서 하루 1,000명 이상 씩, 그래서 연간 50만명 이상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렇게 많은 숫자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은 아마 세계 대전 이외에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자살에 대해 우리는 그 정체를 잘 알 필요가 있다.

자살 자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유다가 예수를 배반한 죄는 유다가 자살한 죄보다 가볍다"라고 볼 정도로 기독교나 이슬람교에서는 부정적으로 본다. 생명이란 신으로 부터의 선물이기 때문에 인간이 신의 뜻을 거슬러서는 안된다는 취지일 것이다. 하지만 쇼펜하우어 같은 학자는 자살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 인간이 다른 종 보다 낫다는 점이라고 설파하였다. 인간 스스로의 선택권을 존중한 결과이겠다. 하지만, 현대 의학에서 자살은 질병의 결과로 일어난다고 본다(그러한 근거를 설명하는 것은 본 글의 취지가 아니므로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정신과 의사들이 자살을 평가하는 도구 중에 "슬픈 사람 척도 (The SAD PERSONS Scale)"라는 것이 있다. 영어를 쓰면 원서 나부랑이를 가지고 풀어먹는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국내에서 체계적으로 연구된 것이 없으니 어쩌랴....  이 척도는 다음의 각 단어의 머리 글자를 묶어서 외우기 좋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괄호 안은 앞에 예를 든 분에 관해 평가한 것임)

  • 성 (Sex): 여기에도 일반인들은 오해가 있다. 여자가 자살기도는 남자보다 3배 이상 많이 하지만, 실제로 자살로 사망하는 것은 남자가 여자 보다 3배 이상 많다.(남자)
  • 나이 Age): 실제로 젊은 사람보다 40, 50대 이후의 중년이나 노인에서 자살 가능성이 높다. (60전후)
  • 우울 Depression): 우울한 감정, 죄의식, 미래에 대한 비관적 생각, 잠들기 어렵고 입맛이 떨어지며 체중이 줄어드는 등의 우울증(우울증 바로가기) 환자에서 자살의 가능성이 높다.(일종의 우울상태 추정)
  • 과거의 자살시도 (PPrevious Attempt): 이전에 자살기도를 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 다시 재시도를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이 부분에 대한 그 분의 정보를 필자는 가지고 있지 않다)
  • 음주 (Ethanol abuse): 술 마시는 것을 통해서 괴로움을 잊는 방식으로 어려움을 해결해온 사람들은 술 자체가 자살의 가능성을 높혀 준다. 물론 알코올 중독자의 자살율은 일반인에 비해서 매우 높다. (이 부분에 대한 정보도 알지 못한다)
  • 합리적 사고능력의 상실 (Rational thinking Loss) :망상에 사로 잡히거나 환각상태에서는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어서 자살의 가능성이 높다. (확실치는 않지만 보도내용으로는 당시까지 현실 판단력에 큰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 사회적 지지의 결여 (Social Support lacking) : 어려움에 부딛쳐서 혼자 해결하기 힘들 때, 주위에서 정신적인, 물질적인 도움이 있다면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해결책을 쓸 가능성은 줄어든다.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여론이 좋지 않은 쪽으로 갔었으므로 사회적인 지지체계는 상당 부분 무너진 상태였을 것임)
  • 계획 (Organized plan): 유서 같은 것을 쓰거나, 약을 사 모으거나, 다리나 고층옥상을 미리 답사해보는 것과 같은 계획적인 행동이 있으면 자살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그 분은 유서를 미리 써서 성경안에 보관했다고 보도되었다)
  • 배우자가 없음 (No Spouse): 현재 결혼 상태에 있는 사람이 미혼, 이혼, 사별한 사람에 비해서 자살의 가능성이 낮다.(그 분은 기혼상태였다)
  • 신체적 질병 (Sickness): 자살에 성공한 경우를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는 상당 수가 자살 반년 이내에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그분은 직전에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고 보도되었다)

이런 판단 기준을 가지고 본다면 10가지 중에 최소한 6개는 해당되므로, 이미 그 분의 자살 가능성은 매우 높았던 것으로 보여진다. 조금만 주위의 누군가가 심각하게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나섰더라면.......대단히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물론 한 명의 도둑을 백 명이 막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지만 말이다.

혹시 지금까지 이 글의 제목과 같은 생각을 가진 독자는 다음과 같이 정보를 수정해서 뇌에 입력하기를 강력히 권유한다.

"죽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필자가 드리는 말씀: 글을 올리면서 혹시 고인이나 그 가족, 친지에 대한 누를 끼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결코 그런 의도가 없음을 밝히며 혹시 제가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글을 썼다면 정정하겠습니다. 저의 의도는 많은 분 들이 자살의 심각성을 알고 적절하게 대처함으로써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자살로 인한 사망을 조금이나마 줄여보자는 것입니다. 한국적 정서에서는 사실 돌아가신 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매우 실례가 될 수 있음을 필자도 알고 있지만 공익에 부합될 수 있다는 생각에 감히 글을 제 홈에 올린답니다. 너그러운 양해를 바랍니다. 삼가 조의를 표하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99년 7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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