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와 관련된 오해를 풀어보자 (7) - 정신과 약물은 습관성이다?

전남의대 정신과 / 전남대학교병원 정신과 소아청소년 정신건강클리닉
최 영


몇 년전 미국에서는 쇼핑 중독이란 용어가 메스컴을 장식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경제적 처지나 구입하는 물건의 실제적 필요성을 감안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쇼핑에 몰두하는 현상을 말한다. 불필요한 물건을 충동적으로 구매하고, 그 구매 행동 자체에 따르는 열광적인 흥분을 맛본다. 그래서 하루 종일 홈쇼핑 TV프로그램을 보면서 앞뒤 생각없이 전화를 걸고..... 구입한 물건은 집안 한켠에 쌓여가고... 신용카드 결제에 문제가 생기는 것....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보는 일이다. 일종의 중독이다.

요즘에는 아이들이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PC 게임에 몰두하면서 학업을 게을리 하는 경우가 많아서, 게임 중독 혹은 컴퓨터 중독과 같은 말이 널리 쓰인다. 인터넷 중독증이란 말도 새로운 유행어처럼 언론에서 앞다투어 사용하고 있는데, 필자도 모 대학의 신문사에서 인터넷 중독증과 관련된 글을 의뢰받았던 것을 계기로 중독증(addiction)이란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가졌었다.

중독이란 말은 대개 "습관성"과 같은 개념으로 쓰인다. 습관적으로 어떤 행동에 몰두하는 경우를 중독이라고 하겠다. 중독 상태라고 보려면, 대개 "내성"과 "금단 증상"을 가진다.

"내성"이란 점차 그런 행동이 반복되면서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극이 필요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쇼핑을 예로 들자면 점차 쇼핑의 회수가 늘어나거나 비싼 것을 사야만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상태다. 술에 비유하자면 원하는 정도로 취하기 위해서는 점차 음주량이 늘어나야 되는 상황에 해당된다.

"금단 증상"이란 그런 행동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초조하고, 안절 부절해지며 다른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쇼핑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찬 상태가 나타나는 것이다. 술을 먹지 않았거나 못먹게 되는 상황에서, 불안해지고, 머리 속에 "술 생각"만 가득하며, 잠도 못자고 악몽도 꾸고 손도 떨게된다. 알코올 중독의 금단 증상은 심하면 환각을 경험하거나 사람도 못알아 보게 된다. 담배를 끊기 어려운 것이 이런 금단 증상 때문이다. (이글을 쓰기 전 하루 동안 필자의 연구실 PC가 먹통이 되어 메일도 못 받고 홈페이지에도 들어올 수 없어서 안절 부절..... 어떻게 빨리 해결할까 그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는데... 역시 일종의 금단 증상이다.)

어쨌거나 이런 "내성"과 "금단 증상"이 중독, 혹은 습관성을 정의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을 , 이글을 읽는 독자들은 알 게 되었다.

며칠 전 한 우울증 환자가 상담과정에서 한 이야기다. 피곤하고 힘이 없고 입맛이 없어서 보약을 먹어보라는 주위 사람의 권유로 한방 병원에 갔다고 한다. 진료를 하던 중 현재 우울증 때문에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고 했더니... "정신과 약은 습관성이 되니까 절대 먹지 말라"고 했단다. 환자 입장에서는 정말로 내가 먹고 있는 약이 습관성이 있는지, 중독이 되는 것인지... 걱정이라며 솔직하게 말해주라고 심각하게 말했다. 너무나 이런 질문을 자주 받기 때문에 요즈음엔 무덤덤하지만.... 병아리 의사 시절에는 "누가 그런 무식한 소리를?" 하는 식으로 흥분도 꽤 자주 했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정신과 약은 습관성이라는 일반인들의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일부 의료인들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그렇다. 정신과의 일부 약물은 습관성이 분명히 있다. 예를 들자면 항불안제(일반인들은 진정제, 안정제 정도로 부르기도 한다)로 사용되거나 수면제로 사용되는 약들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벤조다이아제핀(benzodiazepine) 계열이나 바비츄레이트(barbiturate) 계통의 약물인데, 장기간 복용하면 약의 일정한 효과를 보기 위해서 투약량이 점차 늘어나며(내성), 갑자기 끊게되면 오히려 더 불안하고 초조하며 잠을 들기 힘들어진다(금단증상).

항불안제나 수면제의 경우 대개의 정신과 의사는 치료의 초반에만 사용하며, 주의깊게 습관성의 여부에 유의하면서 처방한다. 이런 종류의 약의 절대량이 처방되는 곳은 정신과가 결코 아니라는 것은 일반인들이 알지 못한다. 신체 질환을 주로 다루는 의사들이 신경성이라며 투여하는 대부분의 약이 이런 약들이다. 그래서 실제로 환자 자신도 모르게 이런 약물에 습관성이 되어서 오는 정신과를 찾는 환자도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이 항불안제나 수면제들은 정신과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약들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우울증 치료제, 정신분열증 치료제, 양극성 장애(과거에는 조울증이라고 불렸지요) 치료제, 강박증 치료제, 간질 치료제, 주의력 결핍증 치료제 들은 앞에서 언급한 내성과 금단 증상이 없다. 즉, 습관성이나 중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대부분의 정신과 약물은 습관성이 없고 중독되지 않는다. 습관성이 있더라도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 가능한 소량을, 최소한의 짧은 기간동안 투약한다면, 그리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우리가 알게된 진실.... 정신과 약물은 일부만 습관성이 있다.

- 99년 9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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