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와 관련된 오해를 풀어보자 (8) - 정신 질환은 귀신 들려서 생긴다?

전남의대 정신과 / 전남대학교병원 정신과 소아청소년 정신건강클리닉
최 영


모 방송국 TV 프로그램에서 귀신들림(빙의 현상)에 대한 내용을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정신질환이나 정신병의 일부는 병이 아니라 "귀신이 들린 것일 수도 있다"는 왜곡된 메세지를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것을 보고 필자는 충격을 받았고, 그날 밤 잠을 설쳤답니다.

출연한 환자(적어도 제 판단에는!)나 부모의 말 "정신병이 아니라, 귀신이 씌어서 그래요"가 가감없이 전달되었고, 퇴마사(귀신이나 마귀 쫓는 사람입니다. 동명의 소설과 영화도 만들어 졌었지요?)의 귀신을 불러내거나 쫓아내는 장면 등.... 보는 입장에 따라서는 신비하고 흥미 진진하게 편집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정신과 전문의 한 사람(정신과 의사들 사이에서 해당 의사의 시술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도 출연해서 그 환자에서 최면을 거는 장면이 상당시간 할애가 되었지요. 전생치료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전생의 귀신이 씌어서 그런 것이라는 결론이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마녀 사냥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정신질환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적이 있습니다. 일종의 살인행위였습니다. 카톨릭 교계에서 교황의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지난 시절 교회의 과오였음을 인정한 부분이랍니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는 사설 기도원이나 요양원에서 귀신이나 마귀가 들렸다며 쇠사슬로 손발이 묶인 채, 안수라는 이름 하에 폭력에 시달리고 급기야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귀신 쫓는 굿이나 부적에 돈을 탕진해 버리는 환자와 보호자도 흔히 봅니다.

우리는 "전생요법" 혹은 "전생치료"라는 이름도 자주 접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고통이나 문제가 그 사람의 전생에 어떤 일이나 한, 혹은 업보로 생긴 것이므로, 그 전생을 알아내야 문제가 해결된다.... 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시행하는 방법입니다. 저는 전생에 대해 깊이 연구해본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잘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이 솔직한 것이겠지요.

모른다고 해서 전생이 없을 것이다고 단정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역시, 몇 사람의 최면 과정에서 전생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서 그것이 전생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논리에 대해서도 찬성하지 않습니다. 최면을 거는 사람의 암시에 따라 얼마든지 내용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저는 귀신에 대한 전문가도 결코 아닙니다. 역시 잘 모르는 영역이지요. 잘 모르기 때문에 그 실체를 부정해서는 안된다는 점에도 동의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이 있다 없다, 혹은 귀신들린 빙의 환자가 있다 없다를 이 시점에서 저는 말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 해봅시다. 병의 실체에 대해 모르는 경우 귀신이나, 악마, 사탄의 영향 때문이라고 간주했던 것은 역사 이래 계속되어온 일입니다. 간질을 현대의학에서는 더이상 귀신병이라고 하지 않지만.... 고대로부터, 중세... 그리고 금세기의 초중반까지만 해도 하늘이 내린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요즈음에도 두통은 머리에 귀신이 들어서, 충수 돌기염(소위 맹장염)은 맹장귀신 때문에....식으로 해석하는 종교인.... 부부 사이의 불화가 있는데 그것을 돌아가신 시어머니 귀신이 씌어서 그러니까 굿을 해야 해결된다는 무속인....도 있음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현재의 정신의학적 입장을 요약해 보기로 합니다.

80년대 90년대를 거치면서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현상에 대해 과거에 잘 몰랐던 것들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감정, 기억, 생각 등이 어떤 생물학적 과정을 거치는지가 입증되고 있으며, 환각, 망상 등의 정신병적 현상에도 뇌의 어떤 변화가 있더라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과학적인 치료에 의한 효과도 비교적 좋으며, 치료 기법이 더 발전되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혹세무민"이란 말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혹해서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 정도로 해석됩니다. "귀신들림", "전생요법" 등의 내용을 흥미 위주로 다루어서 "치료받아야 될" 그리고 "치료를 받아서 좋아질 수 있는"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을 현혹하고.... 일반인을 현실이 아닌 비현실의 세계로 이끄는 것이 "혹세무민'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허준"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동의보감의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맺고자 합니다.

사수(정신이상을 일컫는 한문 용어)의 증상: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모두 허망한 것을 사수라고 한다. 심해지면 평생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일 또는 온갖 귀신 잡귀들에 관한 것을 지껄이게 되는데 이것은 기혈이 극도로 허약하여 신경이 쇠약해졌거나 담이 막혀 가슴이 답답하였을 때 생기는 것이지 요사스러운 귀신이 붙어서 생긴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중략...

눈에 오색잡귀들이 보이는 것은 모두 자기의 정신이 나가고 신경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외부로부터 귀신이 덤벼 들었기 때문은 아니며 원기가 극도로 허약한 증상이다. (홍문화 저 "허준 동의보감"에서 인용)

우리의 선조들은 몇 백년 전 이미 정신질환은 귀신들린 것이 아님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현대의 과학적인 정신질환에 대한 개념, 즉 생물학적 원인, 심리적 원인, 사회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함을 미리 말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만약, 허준이 타임머신을 타고 현대로 와서, 정신병을 귀신 들렸다면서 안수하고 귀신쫓기를 하고 전생 어쩌고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본다면..... 혀를 차지는 않을지.... 씁쓸한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정신질환은 귀신이 들린 것이라는 오해는 제발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관련 칼럼 우리들 마음 속의 악마)

- 2001년 3월 13일 - (www.DrChoi.pe.kr 토론게시판 1999/09/13 글에 일부 내용을 첨가하여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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