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으로 풀어본 정신건강 (1) -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전남의대 정신과 / 전남대학교병원 정신과 소아청소년 정신건강클리닉
최 영


무슨 난데 없이 속담풀이? 국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도 아니요, 역사나 과거 전통과는 무관한 사람이 왜 이럴까 의문을 제기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속담을 좋아한다. 나의 진료실에서, 강의실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주요 메뉴라고나 할까. 일단 상대방에게 나의 뜻을 명료하게 전달하는 매우 편리한 도구더란 것이다.

교과서적인 정신과의 첫 진료 과정에서는 속담풀이를 꼭 하게 되어있다. 소위 정신상태에 대한 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인지(cognition) 능력에 대한 평가를 하는데 그 중에서 추상적 사고(abstract thinking) 능력을 검사하는 방법으로 속담풀이가 사용된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대개 뇌의 손상이나 지능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시행된다. 여기에서는 검사 목적이 아닌 우리들의 정신건강 그리고 치료적 목적으로 속담을 이야기 하는 것이 조금 다르다면 다르다고나 할까...

이제 나는 속담을 통해서 우리의 정신건강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이 속담은 내가 정신과 의사가 된 이래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이다. 나에게 오랫 동안 치료를 받은 환자들의 대부분, 특히 소위 정신증(psychosis)에 해당되는 분들은 귀가 닳도록, 반복적으로 들은 이야기일 것이다. 관계 사고(idea of reference) 혹은 관계 망상(delusion of reference)이라는 증세가 있다. 정신분열증, 망상성 장애, 조증이나 우울증 등 다양한 병에서 흔히 보이는 증상이다.

일자리를 알아보다 지쳐서 귀가 길에 버스에 올라탔다. 자리에 앉았는데 우연히 고개를 돌려보다가 뒷 사람과 시선이 마주쳤다. 왜 쳐다보지? 그냥 우연히? 아니면 혹시 저 사람이 내가 실직자란 것을 알고 있어서? 이런 생각 속에 그는 불안해 진다. 다시 돌아보니 그 사람이 씩 웃는다. 야...정말 알고 있구나...그래서 저렇게 비웃는구나..더 이상 그는 버스에 앉아있지 못하고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 버렸다.

수업 시간이다. 나는 남자 수학선생님을 좋아한다. 어제는 그 선생님의 허리띠 아래 쪽을 보면서 선생님의 성기에 대한 상상을 했다. 그런데 오늘 수학시간에는 선생님이 나와 눈길을 한번도 마주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어제 내가 상상한 불경한 내용을 알고 계시나 보다. 이런 큰일 났네....쉬는 시간에 다른 여자 얘들끼리 이야기 나누며 깔깔 거리고 웃는다. 내가 옆에 갈라치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아니 우리 반 애들에게까지 다 소문이 났네? 이제 부끄러워서 난 어떻게 학교를 다니지...

직장에서 나는 창사기념일에 모범 직원으로 표창을 받았다. 그 후로 동료 직원들이 나를 피하고 접촉을 꺼린다. 나를 시기해서 그럴까? 과의 분위기가 서먹서먹해졌다. 노조원들끼리 쑥덕거리는 폼이 나를 회사의 끄나풀로 생각하는 것 아니야? 이런...퇴근하는 길에 포장마차에 들렀다. 혼자 한잔 하는데 옆 사람들이 자꾸 나를 흘끔거린다. 건장하게 생겼다. 혹시 나를 미행하는 남자들 아닐까?

남의 평범한 행동을 자신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 관계 사고의 핵심이다. 남과 나는 분명히 다른 존재다. 그 사이에는 엄연한 경계(boundary)가 있다. 나는 나의 생각이나 감정에 따라 행동하고 상대방은 상대방의 그것에 따라 움직인다. 이 분명한 경계가 무너진 것 때문에 관계 사고가 생긴다. 전문 용어로는 자아 경계의 이완(loosening of ego boundary)라고 한다.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느끼는 것. 이것이 관계 사고다. 학문적으로는 투사(projection)의 정신 혹은 심리 기제(mental mechanism)를 사용한 결과로 본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화를 남들이 나에게 화내는 것으로...자신 스스로에 대한 비난이나 죄악감을 남이 나를 비난하고 비웃는 것으로 즉,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남을 못 믿는 사람이나 자신감이 없는 사람에서 많다. 열등감이 그 뿌리라고 하는 학자도 있다.

하지만, 나는 환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도전한다. 물론 말로 말이다. 그런 생각은 일종의 "오만"아니냐... 남들은 자기 앞가림에만도 바쁠텐데 당신에게...당신의 말하지 않은 생각에.. 그렇게 관심이 있어 할 것 같은가? 당신은 나의 마음을 아느냐? 어떻게 알 수 있느냐? 그리고 마지막에 꼭 한 마디...정신과 의사인 나도 당신에 대해서, 당신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서 "당신이 말해주지 않으면" 모른다. "척 보면 압니다"였으면 정신과 의사하기 무척 편하고 좋았겠지만 말이다.

나는 나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이다. 고로 자신감이 없더라도, 자신에게 약점이 있다고 느끼더라도, 또는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느끼더라도.... 당당하게 행동하라(물론 실제 남에게 해를 끼치는 죄를 지어놓고도 뻔뻔해도 좋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이것이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위해 주는 도움말이다.

- 99년 3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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