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으로 풀어본 정신 건강 (12) - 거미는 작아도 줄만 잘 친다 (1)

전남의대 정신과 / 전남대학교병원 정신과 소아청소년 정신건강클리닉
최 영


현대는 자기 표현의 시대, 자기 주장의 시대라고 한다. 세상 사람들이 온통 자신의 존재를 남에게 알리고 싶어 몸부림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본다.

청소년들은 남의 시선을 강하게 끌 수 있는 자신만의 독특한 의상, 머리 스타일, 말투를 구사하지 못해서 난리들이고, 가끔 받아보는 금빛 명함에는 뭐 하는 사람인지가 헷갈릴 만큼 수 많은 직함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서점에 깔리는 베스트 셀러 목록에는 튀는 제목으로 승부하고자 하는 노력이 역력한 책들이 꼭 끼어 있다.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개인 홈페이지의 대다수는 방문자들은 별로 관심이 없을 법한 자신의 신상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가족사로만 채워져 있다. 기업이나 기관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도 자기네 회사 자랑 일색이다. 어느 탤런트의 성 고백도 자신의 존재를 남에게 알리고자 하는 욕구가 은근하게 스며있다. 학자들도 일단 자신의 업적을 앞다투어 언론에서 다루어주기를 바라는 태도로 채 연구결과가 완성되기 전에 보도자료라는 명목으로 언론사와의 달콤한 밀월을 꿈꾼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의 자서전 출판이 러쉬를 이루고.... 거리의 네온사인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한껏 몸을 부풀린 채 경쟁적인 야한 포즈로 우리를 유혹한다.

이 글을 쓰는 필자 자신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

하지만 이 와중에서 한없이 자신이 작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두렵고, 남의 시선과 비판을 미리 걱정해서 움추러 드는 사람들.... 자신을 당당하게 주장하고 표현하는 남들을 바라보면서, 비교되는 자신을 한탄하고 열등감을 느끼면서 더 위축되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 이런 사람들이 다수일 수도 있다.

부끄럼이 많고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 말하기를 주저하고 쑥스러운 태도로 말한다. 심한 경우 말을 더듬게 된다. 대개의 원인은 불안 때문이다. 이 불안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우습게 보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특히 많은 청중 앞에서, 혹은 소위 권위가 있다는 사람들 앞에서 이런 현상이 심하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건... 나는 나의 주장을 해야 한다.
  • 자기중심적으로, 즉 이기적으로 말하지 못한다. "아무도 나에 대해서, 내가 한 일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 내 이야기는 따분해할거야.." 그런 생각 속에서 정작 하고 싶은 자신의 말을 하지 못하고 남의 이야기만 듣고 끝난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남들이 더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 무대의 중심에 서기를 꺼려한다. 수업 중에, 대화 중에, 혹은 모임의 대장을 뽑는 선거에서 남 앞에 나서는 것은 마치 자신이 벌거벗고 있는 느낌을 가진다. 벌거벗은 모습이 더 아름다울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 적어도 겉으로는 무관심한 척, 그래서 냉담한 태도를 취한다.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꺼려서 자신의 진짜 얼굴을 마스크 뒤로 숨기는 것이다.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생기는 두려움을 교묘하게 감추려 한다.
  • 기회를 잡지 못한다. 자신에게 발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승진의 챤스에서... 한발 뒤로 물러선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저는 다음 기회에..."양보의 미덕이라는 교묘한 합리화가 동원된다. 사실 기회는 스스로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여러 개의 문을, 그리고 자주 두드리는 사람에게 문은 열린다. 열리건 안 열리건 자신이 들어가고 싶은 문은 일단 두드려야 한다.
  •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다. "키가 작아서.... 이런 얼굴로 내가?... 나는 언변이 없어... 머리가 안 좋다니까?..." 이유도 가지 각각이다. 이렇게 자신에게는 인색한 잣대로 평가하면서, 남들에게는 후한 평가를 한다. " 저 애는 롱다리구나... 집안이 든든해.... 참 능력이 있어... 성격이 참 좋아..."  소위 "나는 OK가 아니고, 남은 OK"라는 심리... 열등감의 핵심이다. 자신과 남에게 똑같은 잣대를 들이 밀어야 한다.
  • 이성 관계에 어려움이 많다. 마음에 끌리는 이성에게 말 붙이기가 힘들고.... 서로 사랑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가 실수해서 상대방이 싫어하면... 그래서 떠나가면 어떻게 하지?" 이런 마음 상태에서는 성적인 즐거움도 전혀 남의 일이 된다.
  • 관심이 내부로 향한다. 남과의 관계에 자신이 없으므로 소위 내성적이 사람들이 자주 하는 행동을 한다. 혼자만의 활동에 빠져든다. 독서, 글 쓰기, 그림 그리기, 음악 듣기, 명상, 수집하기, 혼자 여행하기... 참 좋은 취미이자 활동이지만 이런 활동 자체가 남과의 관계를 피하는 수단이 되어 버린다면 문제다.
  • 친구가 적다. 있더라고 제한된 몇몇 친구와만 어울린다. 이런 친구들은 대개 안전하게 느껴지고... 그리고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사람들에 국한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나마 그 친구들마저 이사를 가거나, 다른 학교로 갈리고... 이성 친구를 사귀게 되면, 결국 혼자 남아서 스스로 더욱 고립되고 외로움을 느낀다.

스스로가 자신감이 없다고 느끼는 독자들은 다음의 속담을 기억하시라.

거미는 작아도 줄만 잘 친다. (☞ 거미는 작아도 줄만 잘 친다 [2])

- 99년 11월 18일 -

의견남기기 - 다른 칼럼 읽기 -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