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으로 풀어본 정신 건강 (15) -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곧이 안 듣는다.

전남의대 정신과 / 전남대학교병원 정신과 소아청소년 정신건강클리닉
최 영


극도로 의심이 많은 정신의학적 상태 중 편집증이 있다. 영어로는 파라노이아(paranoia)라고 하는데 그리이스 어의 para(beside)와 nous(mind)에 뿌리를 둔 것으로, 마음을 벗어난 상태, 마음의 결함이나 이상을 뜻한다. 상대방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핵심 증상이다. 대표적인 편집 상태 중 하나가 의처증이나 의부증이다. 이 편집증은 치료하는데 힘이 많이 든다. 진실한 말로 설명해주어도 그 설명 뒤에 뭔가가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 또 의심하기 때문이다. 논리나 이성으로 고쳐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편집증은 물론 정신병적인 증상의 하나지만, 소위 "정상"이라며 일상 활동을 하고 있는 정치인, 폭력배, 국수주의자 집단, 사이비 종교집단, 테러리스트 등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이 집단의 구성원이 생각하는 방식의 특징은 흑백논리이다. 즉, 나는 옳고, 나와 의견이 다른 모든 사람은 적이라는 극단적 사고를 한다. 상대방의 사상과 믿음은 틀린 것이요, 내가 믿는 종교만이 진리이며, 특정 집단을 제거해야 세상에 평화가 온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는 것이다. 독일의 나치스가 자행한 유태인 학살에도 이 편집증의 심리가 배경에 깔려있다.

Norman Cameron이란 학자는 이 편집증이 생기기 쉬운 일곱가지의 상황을 설명하였다. 상대방으로부터 학대를 받을 것만 같은 예상이 들 때, 불신과 의심을 조장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사회적으로 고립된 경우, 시기와 질투를 키우는 상황, 자존심을 깍아 내리는 경험을 하게 될 때, 남의 모습에서 자신의 결함을 바라보게 되는 경우, 그리고 특정한 사건이나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 어떤 숨겨진 의미나 동기가 숨어있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 상황들이 그것이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 빠지면 인간은 불안해진다. 그래서 그 무언가가 잘못되어있다고 생각하고는 나름대로 그 상황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려고 노력하게 마련이다. 그 결과, 상상 속이건 실제하는 인물이건 그 누군가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자기를 해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확신을 마음속에 품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고 자신의 공격성을 정당화해서 복수의 칼날을 뽑을 대상이 선택되게 된다. 이것이 편집증에 대한 정신의학적인 설명 중 하나다.

안타깝게도 이런 편집증의 생성 과정이 있는 그대로 21세기에 접어든 대한민국의 의료현장에서 재현되고 있다. 준비가 제대로 안된 상태라는 것, 그리고 돈이 훨씬 더 들어가는 제도라는 것을 감추고 의약분업을 강행한 정부, 그리고 그 정부의 편을 들었던 언론과 일부 시민단체는 여전히 의약분업의 실패를 감추고 재정파탄의 책임을 의사들에게 떠 넘기기 위해 국민의 의사에 대한 불신을 부채질한다. 의사는 환자의 돈을 빨아먹는 흡혈귀와 다름없고 의료보험 재정의 파탄은 모두 다 의사 탓이라고 매도한다. 아니, 이것이 대부분의 의사들이 현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이라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환자는 진료실에서 이 의사가 불필요한 검사를 하는 것은 아닌지, 쓸데 없는 치료를 권유하는 것은 아닌지, 하루이틀만 먹어도 될 약을 일주일 동안 먹으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혹시 자신이 내야할 돈 보다 더 많이 착취해가는 것은 아닌지를 의심한다. 그래서 이 의사, 저 의사, 그리고 또 다른 병원을 반복해서 전전한다. 그리고 몇 달 뒤 보험공단의 진료내역조회가 담긴 엽서를 받아들면서 그런 의심의 꼬리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던 자녀가 몇 년 후 야뇨증이 생기면, 혹시 몇 년 전 찰과상을 치료했던 의사가 큰 병원에 보내서 정밀검사를 했어야 되는데 잘못해서 이런 결과가 생긴 것은 아닌지 더 큰 병원에 가서 따져보게 된다. 꼬투리만 잡히면 극단적인 분노가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복지부의 발표를 그대로 반복하는 이런 저런 신문방송의 보도는 현재는 건강한 일반 국민들에게도 잠재적인 "의사 편집증"을 주입시킨다.

의사는 제대로 된 진료를 양심껏하면서도 받고야 마는 상대방의 의심스런 눈초리에 서운하다. 정당하게 시행된 진료행위의 비용을 자신들이 부당하게 삭감하면서도, 의사에게 부당청구의 누명을 씌우는 정부에 분노한다. 전산입력 하나 잘못하면 70세 노인에게 출산을 시켰다는 언론 보도가 나올지 모르므로 확인 또 확인을 해야 한다. 의료보험료를 내지 않은 사람이 돌아가신 다른 분의 보험증을 대신 가지고 온 것을 모르고 진료하게 되면, 사망한 사람의 진료비를 허위로 청구했다는 누명을 쓰는 것이 필연이므로 환자 사진이라고 일일이 챠트에 붙여야 되는 것 아닌가를 고민한다. 기계가 아닌 인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의료가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불확실성의 덪에 걸려 사고라도 날라치면, 그것이 불가피했다 할 지라도 뒤 따르는 무단 점거농성 때문에 자신의 명예가 날라갈지 모른다는 불안에서, 만에 하나를 위해 방어진료를 하게 된다. 의사 역시 분노의 화살을 마음 속에 품고 있게 된다.

편집의 대가는 불행 그 자체다. 의처증 환자의 가정이 행복할리 없다. 종교 전쟁이 인류 문명을 얼마나 뒤로 퇴보시켰는지, 나치스의 광란이 수백만의 생명을 앗아간 사실을, 지역감정의 회오리가 대한민국을 얼마나 오랜 동안 괴롭혀 왔는지를 우리는 기억한다.

요즈음 필자는 한국 의료의 미래를 심각하게 걱정한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곧이 안 듣는다."는 속담은 국민의 마음 속에는 의사에 대한 불신으로, 의사의 마음 속에는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아주 깊이 자리 잡고 말았다. 편집증의 치료가 얼마나 힘든지를 잘 아는 정신과 의사로서, 오늘날 한국사회의 편집증을 어떻게 치료해야 할 것인가 답답하기만 하다.

필자는 진단한다. 이 편집증을 조장하는 집단이야 말로 정말 심각한 병적인 편집증이라고.... 그리고 기억한다. 독일의 나치스는 "반면 교훈"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음을....

- 2001년 6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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