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으로 풀어본 정신 건강 -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전남의대 정신과 / 전남대학교병원 정신과 소아청소년 정신건강클리닉
최 영


필자의 의예과 시절, 살던 집 근처에 벽돌 공장이 있었다. 이제 막 주택 단지가 생기기 시작한 곳이라... 드문드문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의 양옥집이 있고, 택시회사 주차장도 있고, 집 짓는 인부들을 대상으로 밥과 술을 파는 허름한 밥집도 있고, 배추밭도 있고.... 아마 독자들은 70년대 한가한 도시 변두리의 풍경을 상상하면 될 것이다.

벽돌 공장이라고 말하기 쑥스러울 정도로 소규모였는데, 만들어진 시멘트 블록(당시에는 부로크라고 불렸었다)을 넓은 공장 마당에 쌓아놓고 호스로 물을 뿌려대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호기심에 물 뿌리던 노인에게 "다 만들어진 블록에 왜 물을 뿌립니까? 그렇게 하면 블록이 부스러지지 않나요?"라고 물어보았더니... 그렇게 해야 한 여름 뙤약볕에도 블록이 금이 안가고 더 단단해진다는 대답을 들었다. 물론 필자는 이런 대답이 진실인지 여부는 알지 못하지만, 아직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그럴 듯한 이론으로 마음 속에 남아있다.

이런 기억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필자가 진료실에서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에 이어 두 번째로 자주 말하는 속담이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것이다.

정신과 진료실에서 만나는 십중팔구의 환자들은 마음의 고통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시험에 떨어져서, 계가 깨지고 돈을 떼어서, 부도와 파산의 공포 때문에, 믿었던 사람의 배신 때문에, 연인에게 버림받아서, 자존심의 상처 때문에, 폭력 때문에, 부부나 가족간의 불화 때문에, 잘 낫지 않는 신체적인 질병 때문에, 외모 때문에, 자신이 어찌 할 수 없는 현실의 어떤 고통 때문에, 그도 저도 아니면 자신이 정신적인 병에 걸렸다는 사실 자체 때문에..... 등등 너무나 많은 현실적인 또는 심리적인 이유가 있다.

원인 여하를 불문하고 환자들은 절망한다. 자신의 인생에 희망의 빛이 사라지고, 어두움의 수렁 속에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음을 느낀다. 영원히 이런 상태가 계속될 것이며, 설령 회복되더라도 내 삶은 이미 망가져 버린 것 아닌가라는 생각에 마음 아파한다.

이럴 때 필자는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를 말한다. 시멘트 블록에 물을 뿌리면, 일시적으로는 부스러지기 쉽고 약해지지만.... 다시 햇살을 받게 되면, 물에 적셔지기 이전 보다 더 단단한 블록으로 새롭게 탄생한다. 당신이 현재의 고통을 경험하고 싸우는 과정에서 오늘의 이 속담을 잊지 않는다면,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경험하는 도전과 고통은 미래의 기회와 행복, 그리고 당신의 정신적 성숙으로 바뀔 수 있다.

필자는 정신적인 질병의 치료를 통해 길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온 환자와 가족들을 바라보면서, 어쩌면 이렇게 사람이 달라질 수 있는가를 자주 느낀다. 보호자들도 비슷한 말을 한다. "병을 앓고 나더니, 오히려 전보다 성격도 활발해지고, 다른 가족을 보살필 줄도 알고, 열심히 사는 것 같아요. 집안 분위기도 좋아졌어요."

얼마 전 필자의 부모님은 만 24년간 살아오던 집에서 이사하셨고, 살던 집은 다른 사람에 의해 헐려져 재건축되었다. 도심의 많은 곳이 그러하듯, 그 주변이 음식점과 모텔, 원룸 등에 의해 점령되고 있는 중이다.

(후기: 1999년 이후 현재까지 한국의료는 "의료 사회주의"라는 폭풍 속에 갇힌 외로운 배가 되고 말았습니다. 양질의 치료를 제공받을 국민의 권리를 무시한 채... 정의라는 가면을 쓴 사회주의 학자, 정치인, 관료, 그리고 정부의 홍보비까지 받아가며 홍위병식 나팔수를 자청한 (자칭)시민단체, 그리고 그들의 허언과 가식에 최면이 걸려버린 일부 집단 들에 의해 포위되어 있습니다. 마치 플로크루스테스(Procrustes)가 자신의 침대에 사람을 뉘어놓고... 작으면 늘려 죽이고, 크면 잘라 죽이는 식으로 "돈"이라는 잣대로 의료를 난도질하는 선동적인 포퓰리즘이 횡행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이나 가족이 병이 나면, 외국의 병원에 가서 거금을 들여 원정치료를 받는 위선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의료 사회주의의 말로는 비참, 그 자체입니다. 이대로 가면 아무도 열심히 진료하지 않게 되고, 그 누구도 새로운 선진 치료 기술을 도입하지 않을 것이며, 의학 연구의 기반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의료사회주의를 도입했던 나라들의 말로는... 결국 건강과 생명에의 위협이라는 화살로 국민들에게 되돌아갈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믿습니다. 언젠가 저들의 무지, 허구와 위선을 가리고 있는 정의라는 탈이 벗겨질 것을. 그래서, 환자 개개인이 정당한 양질의 진료를 받을 권리가 보장될 것을.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질 것임을!)

- 2001년 12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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