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으로 풀어본 정신 건강 (4) - 매 끝에 정이 든다.

전남의대 정신과 / 전남대학교병원 정신과 소아청소년 정신건강클리닉
최 영


요즈음 신문지상의 가십거리로 학교현장의 상황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매 맞은 학생이, 혹은 같은 반 아이가 핸드폰으로 112 신고를 해서 경찰이 출동하고...그런 경찰의 출동에 교육부에서는 항의를 하고... 그래서 선생님들의 한탄과 탄식은 늘어났다고 하며, 극단적으로 아이들을 못본 척 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고... 어쨌거나 복잡한 세상이다.

그래서 일부 교육청에서는 학생체벌에 대한 세부 기준을 마련했다는 기사도 있다. 체벌없는 학교 만들기 추진 위원회가 만들어지고, 단체기합도 금지되며, 매 때리는 횟수도 제한되고 매의 종류와 규격도 정해져 보내졌단다. 주걱형, 회초리형이 있고 크기는 얼마 정도여야 되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학생에게 체벌의 종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고개를 끄덕이는 독자도 있으리라...

필자는 아이들을 양육하는 부모나 교사가 매를 때려야 한다 혹은 매 때려서는 안된다는 견해를 이야기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매 때리기는 자녀나 학생 자신, 문제되는 행동의 정도, 다른 훈육 방법들에 대한 반응 등을 고려하여 매가 약이 되기도 하고 독약이 되기도 하므로 선악을 논의하는 것은 전혀 본 글의 요지와는 관계가 없다.

사랑의 매라는 말이 있다. 누가 만들었는지 굉장히 멋진 단어다. 매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때린다. 그럴 수 있다. 물론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맞는 입장에서도 사랑의 감정을 이해할 때야 비로소 사랑의 매가 성립된다는 사실. 필자는 대학 시절에 등산을 가서 같은 모임의 친구, 선후배끼리 치고 받고 한 적이 있다. 물론 엄격한 격식을 갖추었고.. 서로간의 반성, 앞으로 자신의 발전을 위한 자극... 그 정도로 공감한 상태에서 서로를 (일방적이 아니었음이 중요하다) 체벌했다. 남의 마음이야 알 수 없지만 필자 자신의 경험은 맞고 나서도 뭔가 후련하고,, 마음이 정화된 느낌... 아무튼 오랜 동안 기억에 남는 사건이었다. 지금의 견해로는 당시의 체벌이 좋은 기억으로 남은 이유는 자신이나 서로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때리고 맞는 사람간에 힘의 균형이 있었다. 즉, 일방적으로 때리고, 일방적으로 맞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자녀, 교사-학생 간의 체벌에서는 힘의 균형이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런 힘의 불균형 상태에서 과연 사랑의 매가 존재할 것인가?

실제로 매 또는 체벌은 즉각적인 효과가 있다. 문제 행동을 줄여주고, 규칙을 적어도 겉으로는 지키는 것처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어떠한가? 분노가 마음 속으로 스며들고(전문 용어로는 억압suppression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는 기회가 주어지면 어떤 형태로든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은 보고 배운다. 체벌을 사용하는 부모, 교사를 보고 아이들은 "아하! 이럴 때는 이런 방법으로 문제를 푸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중에 친구를 때리게 되고, 배우자를 때리게 되고...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는 평범한 말이 실제 아이들의 행동으로 실현된다는 것이다.

체벌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모나 교사가 있다면 다음의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먼저, 체벌이외의 다른 대안이 있는가를 생각해보자. 혼자서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 아이가 좋아하는 활동을 제한 하는 것, 권리를 일정 기간 박탈하는 것 등이 있을 수 있다. 핸드볼 경기에서 파울을 한 선수를 일정 시간동안 퇴장 시켰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경기에 뛰게 하는 규칙이 있다. 이것을 Time out이라고 부른다. 이 기법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둘째, 체벌하는 사람 자신의 감정 상태를 살펴보아야 한다. 내가 다른 일로 화가 나있는 것은 아닌가? 내 자신의 우울, 불안 때문에 ... 내가 즐겁고 마음이 편한 상태였으면 체벌하지 않을 일을 가지고, 매를 들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 아이의 문제 행동 때문이 아니라, 어른의 감정 때문에 때리는 것은 결코 사랑의 매일 수가 없다.

셋째, 체벌의 일관성을 생각해보자. 전에 웃고 넘어가거나, 주의만 주었을 일에 매를 든다면.. 아이의 입장에서는 혼란이 생긴다. "어떨 때는 화를 내고... 어떨 때는 넘어가고... 내가 한 일이 정말 잘못된 것인가?" 아이입장에서는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서라도 다음에 또 한번 문제행동을 시도해 보게 된다. 일관성 없는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가 일관성 있는 아이가 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넷째, 아이에게 말할 기회를 먼저 주자. 법정에서도 판결을 내리기 전에 자신을 변호하고 자기 주장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 일단, 변명도 충분히 들어보고, 아이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부모나 교사 입장에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말해보자. 실제로 매에 반항하는 아이들이 품는 불만은 왜 맞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많다. 굳이 때리려면, 아이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고, 어른도 때리는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체벌은 문제 행동을 줄이기 위한 마지막 수단임을 생각하라. 매가 효과가 없으면 나중에 더 이상의 방법은 없다. 낭패보기 십상이다. 효과가 있던 없던 맞을 아이는 맞아야 된다고? 그러면 사랑의 매가 아니다.

매 끝에 정이 든다는 속담이 있다. 실컷 싸우고 나서 도리어 정이 든다는 말 정도로 해석된다. 힘의 균형이 있을 때, 자신의 의견을 말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진 후에, 그리고 적어도 서로간의 사랑이 확인된 후에... 그때야 비로소 이 속담은 진리가 된다.

매는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다. 때리는 사람과 맞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랑의 매는 때리는 사람만 사랑을 가져서는 안되며, 맞는 사람도 그 매에 스며들어있는 사랑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리노스"라는 이름의 신이 등장한다. "리노스"는 저 유명한 "헤라클레스"의 음악선생 노릇을 했는데 이 힘센 제자를 너무 거칠게 다룬 것이 화근이 되어 "헤라클레스"가 내려친 약기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요즈음 메스컴에 "리노스"와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된 분들이 오르내리는 것이 안타깝다.

매 끝에 정이 들 확신이 없으면, 매를 들지 말아야 한다.

- 99년 5월 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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