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으로 풀어본 정신 건강 (5) - 물이 넓어야 고기도 논다.

전남의대 정신과 / 전남대학교병원 정신과 소아청소년 정신건강클리닉
최 영


진료실에서 혹은 인터넷 상의 홈페이지를 통해 소아 청소년 문제의 상담을 하면서 느끼는 점 한가지를 적어보고자 한다. 필자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다음의 행동을 역시 하고 있음을 글 머리에 미리 밝혀둔다.

부모들은 나름대로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겠다, 혹은 어떤 아이로 키우겠다는 생각이 있다. 사회성이 좋고 다른 아이와 잘 어울리는 아이, 자기 표현이 분명한 아이, 공부 잘하고 똑똑한 아이, 예술성이 풍부한 아이, 창의력이 높은 아이, 독립적인 아이, 씩씩한 아이, 튼튼한 아이..... 그래서 많은 부모들은 그런 아이를 키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또는 적어도 이런 아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다. 내성적이지 않은 아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아이, 소극적이지 않은 아이, 또는 따돌림을 당하지 않는 아이... 그래서 역시 그런 아이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이런 생각도 있다. 부모의 역할은 이러이러 해야한다. 책에 보니까 성공한 누구누구의 부모는 아이를 이렇게 키웠다더라... 강의를 들어보니까 아이들은 이렇게 해주어야 한다더라... 남들은 이 나이가 되면 어떻게 하더라... 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그리고 항상 자신이 잘하고 있나를 평가해보고, 곁눈질로 남들은 어떻게 하는가를 살펴보면서 무던히도 자녀를 위해 애를 쓴다. 심지어는 아이가 부모 자신의 유일한 자존심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물론 뜻대로 아이가 따라오지 않으면 부모의 것을 지나치게 강요해서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혹시 자신이 부모로서 결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우울해지는 부모도 있다.

이런 노력을 하는 와중에도 우리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혹시 내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 때문에 앞에서 말한 희망사항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닌가?"라고 말이다. 내가 내성적이니까 아이는 외향적이었으면 좋겠고... 내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는데 형편상 기회를 갖지 못했으므로 피아노를 아이가 잘했으면 좋겠다... 혹은 내가 공부를 못 했던게 한이 되니까, 아이는 일류 대를 가기를 바라고... 내가 경제적인 문제는 없는데 명예가 별로 없으니 아이는 세상사람들이 알아주는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떠나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실제로 어려운 일이다.

이런 상황은 물고기를 키우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좁은 도랑을 파놓고 물고기가 그 방향으로 바라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물고기는 넓은 물에서,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헤엄칠 수 있어야 한다. 키우는 사람의 의도대로 자라는 물고기는 좁은 어항 속의 관상용 물고기밖에 되지 못한다. 보기는 좋지만, 물고기의 인생은 불행 자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필자도 몇년전 좁은 어항에서 몇 마리 금붕어를 키워본 적이 있다. 아이의 어린이날 선물(물론 아이가 원한 것이 아니라 필자가 일방적으로 정한 선물이었다. 이런 선물은 아이가 아닌 부모 자신이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일 뿐이다고 지금은 생각한다)로 조그만 어항과 금붕어를 사서 키우기 시작했다. 뭐 정서적인 경험을 해주겠다는 그런 저런 이유에서 시작한 일이다. 1년여를 특별한 문제 없이 키웠더니 주위에서는 그 정도면 오래 키웠다고 했지만 게으른 탓에 물고기를 보충하지 않고 마지막 한 마리가 남았다. 어항을 청소하기 위해 조그만 대야에 한 마리 물고기를 옮겨두고 외출 후 돌아왔더니 아뿔싸! 물고기가 베란다 맨 바닥에서 죽어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농담으로 외로움을 못이겨서 금붕어가 스스로 뛰쳐나와 자살했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그 조그만 사건을 경험한 후로 필자는 금붕어를 키우지 않는다.

우리는 아이들이 부모가 정한 좁은 어항, 혹은 도랑 안에서만 살기를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 다른 커다란 물고기에 잡혀 먹힐 염려가 없고, 관리가 편하고. 보기도 좋고, 어른 들의 뜻대로 될 수 있다는 그런 저런 이유를 들어 우리 자신을 합리화 시키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물이 넓어야 고기도 논다"는 속담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부모의 뜻이 아닌, 스스로 선택한 방향으로 자유롭게 헤엄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 나가게 해주자. 그 선택의 여지가 많은 경험 속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선택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할 수 있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

이 글도 또 하나의 고정 관념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 99년 5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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