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으로 풀어본 정신 건강 (6) - 꿀도 약이라면 쓰다.

전남의대 정신과 / 전남대학교병원 정신과 소아청소년 정신건강클리닉
최 영


정신과 의사로서 역시 제일 어려운 것은 말이다. 소위 입으로 먹고 사는 정신과 의사가 말이 어렵다니? 라고 의문을 가질 사람도 있겠다.진료를 하다보면,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그 첫째요, 또 할 말을 해야 하는 것이 둘째로 할 일이다. 말을 통해서 관계를 형성해서 적절한 치유 책을 제시하는 것, 그리고 그 치유 책을 따라 오도록 하는 것. 그것도 제한된 공간과 시간 안에서 모든 것을 이뤄 나가야 한다.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다. 아파트 위층에 유치원에 다니는 외동아들을 둔 젊은 부모가 이사를 왔다. 싹싹하고 인사성도 좋고 다 좋았는데, 문제가 딱 하나 있었다. 새벽 두시, 세시까지 아이가 뛰어다닌다는 것이다. 밤낮으로 쿵쾅쿵쾅... 처음에는 우리도 아이를 키웠으니까.. 그런 마음으로 친구부부는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일주일여 동안 시달린 친구는 인터폰을 몇 번이고 들었다 놨다 했다고 한다. 그래도 새벽 세시에 인터폰을 한다는 것이 미안해서 말이다. 주말에 우연히 엘리베이터 안에서 위층 부부을 만나서... 한 마디했는데 "너무 예민하신 것 아니냐"라는 식의 핀잔만 들었다고 한다. 자신감이 넘치는 부모가 요즘 세상에는 너무 많다. 남의 말은 듣기 싫다는 심리다.

전화가 걸려왔다. 약간의 안면이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아이가 어쩌고 저쩌고... 그런 저런 문제 때문에 고민이란다. 필자의 대답. "그 정도면 병원에서 한번 보는 것이 좋겠는데요". 전화 건 사람 왈 "아이를 어떻게 정신과에 데려 가느냐? 아이가 충격받지 않겠느냐", "혹시 개인적으로 식사라도 하면서 이야기를 들어줄 수 없느냐? 연구실에서 접수 않고 그냥 봐줄 수는 없는가? ". 난처한 상황이다. 아이에게 어느 정도는 심각한 문제가 있어 보이고 전화를 건 것으로 보아서는 분명히 부모로서 걱정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병원에 오란 말을 공연히 했다는 생각이 든다. 서운한 말투로 바뀐다. "병원에 안가고 부모가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안와도 될 정도의 문제라면 내가 왜 오라고 했겠느냐?"라는 말이 입 속을 맴돌지만 표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나의 의견을 듣고자 하는 태도는 아니니까... 그러면 전화는 왜 했는지... "나름대로 해보시고 안되면 다음에 연락을 주시지요"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다.

진료실에서의 한 장면. 꽤 장시간의 면담을 한 후 약물치료가 필요하다고 말을 했다. 보호자 왈 "어떻게 상담으로 안될까요? 정신과 약은 머리를 멍청하게 한다던데....." 보이는 증상의 정도로 보아서는 대화를 통한 치료보다는 약물치료가 꼭 필요함을 설명했지만 아버지는 막무가내다. 하기야, 인스턴트 식품은 해롭다며 지금까지 라면도 안 먹이고 키웠단다. 아이를 그렇게 아끼고 염려한다면 제 삼자의 말도 귀기울여야 한다. 라면이 해롭다는 말도 남에게서 들은 말일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에서 의사는 의견을 줄 수밖에 없고 취사선택은 부모가 하게 되는데, 상당수의 부모는 자신의 입에 쓴 말은 듣지 않고 단 말만 듣고 싶어한다.

다음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하늘 나라의 명공 헤파이스토스는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신들과 인간을 다스리는 왕인 제우스의 방패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들이 아버지 방패를 만들어주다니? 하기야 신화일 뿐이니까 논리적인 것을 기대할 수는 없고 이 글의 주제에 벗어난 내용이니까 넘어가기로 한다. 그런데 이 헤파이스토스가 태어나면서부터 절름발이(이 용어는 부적절하지만 신화에 나온 것이니까 역시 넘어가자)였다고 한다. 오늘날의 소아마비쯤 될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인 헤라 여신은 그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이 아들을 하늘에서 내 쫓았다. 보기 싫은 것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매우 인간적인 신의 모습이다. 신화는 우리 인간의 여러 모습이 투사되어 나타난 것이라는 증거다.

의사들은 상대방이 듣기 싫어하는 말도 해줄 수밖에 없는 입장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그렇게 하지 마시고 이렇게 해주시지요." "재발이 많으니까 앞으로도 치료가 계속 필요합니다." "일반 학교보다는 특수학급이나 특수학교를 생각해 보십시오." 다들 부모가 듣기 싫어하는 말들이다.

꿀도 약이라면 쓰다는 속담이 있다. 자기에게 이로운 말도 타이르는 말은 싫어한다는 뜻이다. 다양한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넓은 귀를 가진 사람의 정신이 건강하다. 그래서 넓은 귀를 가진 환자와 보호자를 만나면 필자는 행복하다. 말 걱정을 덜 해도 되니까 말이다.

- 99년 5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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