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으로 풀어본 정신 건강 (8) - 부부가 있은 후에야 자식도 있다

전남의대 정신과 / 전남대학교병원 정신과 소아청소년 정신건강클리닉
최 영


"스트레스"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그 중에 "삶의 변화 혹은 생활 사건 때문에 흔들린 정신적 안정을 되찾아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는데 드는 시간과 노력"이라는 정의도 있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미국의 경우 스트레스가 되는 사건의 순서가 1. 배우자의 사망, 2.이혼, 3.부부 별거인데 비해서 한국에서의 연구 결과는 1.자식의 사망, 2.배우자 사망, 3.부모사망, 4.이혼 등의 순이었다.

이 결과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부부 보다는 자녀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식 사랑이야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농담으로 "IMF시대에도 소아정신과는 잘되지?"라고 말하는 정신과 동료가 있었다. 실제로 부모가 아프면 대충 때우지만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빚을 내서라도 병원에 달려오는 경우를 가끔 보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 농담에는 어느 정도의 진실이 있다.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또 하나 다른 과 의사에게 들은 이야기. 요즘 성인들이 집안의 노인이 아프면 비용문제 등으로 검사를 망설이는데 비해서 자식이 아프면 의료 보험에서 지급해주지 않는 MRI(자기공명 영상진단)도 서슴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365일이 어린이 날이니까 한국에서는 어린이날을 없애야 한다는 다소 과격한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우리의 자식 사랑 자체를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교육이야말로 미래를 위한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투자라고 생각하기에 근본적인 생각에는 동의한다. 화목하고 조화로운 가정에서 훌륭한 그리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아이들이 자란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모든 사람들이 아는 것.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행복한 가정은 화목한 부부 관계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잊는 부모가 많다는 것이다.

필자가 진료실에서 경험하는 흔한 장면 하나. 아빠 몰래 엄마가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오는 것이다. 이런 저런 문제가 있는데, 이번 주에 학교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와서 학교에 가보니 애가 어쩌고 저쩌고... 아빠에게 이야기하면 신경을 쓸 것 같아서, 무조건 화를 내니까... 병원에 못가게 할까봐 겁나서.... 일단 병원에서 진료를 해보고 결과에 따라서 아이 아빠에게 말하겠다...등등. 필자가 답답함을 느끼는 상황이다.

당혹스러운 상황 중 또 하나는 자녀를 병원에 데리고 온 부모가 다투는 것이다. 가족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생중계 해주는 것이니까 치료를 위한 보다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어서 좋은 점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야 치료가 될 것인지 원.... 이번 주에도 대기실에서 말 싸움 하던 부모가 진료실에 들어와서는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서는 고개를 돌리고 있다. 아빠는 병원에 온 것 자체가 불만이고 엄마는 아이에게 무관심하고 모든 것을 자신에게 떠 넘기고는 잘못되면 자신 탓을 하는 남편을 원망했다. 이런 상황을 중재하는 것부터 치료가 시작된다.

자녀의 정신 건강을 걱정한다면, 부부 간의 건강한 대화와 화목한 관계가 우선이다.

원만한 부부 관계를 위해 몇 가지 피해야 할 것들을 소개한다.(Kadis와 McClendon 1998)

1. 비밀
배우자가 보지 않는데서 모르게 이루어지는 많은 행동들이 관계를 해친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나 협조관계를 깨뜨린다. 비밀스러운 행동과 태도는 의심과 불신을 낳고 상대방을 화나게 한다. 이런 마음 상태가 혼외 관계와 같은 문제행동을 일으켜서 건강한 관계를 해치고 여러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자신을 배우자에게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먼저다. (먼저 상대방의 비밀부터 알고 싶다고요? 의처증, 의부증 진단을 받을 가능성이 있군요)

2. 돌출 행동
예상치 못했던 평소와 다른 행동은 상대방에게 충격을 주어서 친밀성을 해친다. 어느 정도의 예측가능한 관계가 안정된 관계이다. 갑자기 집에 배달되어온 큼직한 TV 때문에 당황한 부인이 남편에게 서운한 것은 돈이 아깝다기보다는 왜 자신에게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 혹은 왜 평소에 안하던 짓을 하느냐...라는 것이다. 특별한 날의 정성이 깃들여진 깜짝 선물은 물론 돌출 행동에서 제외된다. 그런 일은 자주 해보자.

3. 거짓말
상대방을 속일 목적으로 거짓말하는 어른을 보고 자라난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게 된다. 남편 모르게 병원에 아이를 데리고 온 어머니들은 사실 일종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배우자가 거짓말을 하게되면 영원히 서로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된다. (여러분은 배우자 모르는 비밀 통장이나 뒷주머니를 가지고 계시나요? 혹시...)

4. 건성
아내들의 많은 불만 중의 하나. 심각한 대화를 할라 치면 남편이 시선은 신문을 보면서, TV를 보면서 시큰둥하게 대화하는 것. 이러한 건성으로 대하는 태도는 본인은 대화에 집중을 못하게 만들고 상대방을 화나게 해서 문제 해결을 방해한다. 건성으로 행동하는 자신 스스로도 성장하는 기회를 잃게 되며 관계의 예측성을 깨뜨려서 친밀한 관계유지가 곤란하다.

5. 변명
"아이 아빠가 알면 화부터 내니까 솔직하지 못했어요" 자신을 합리화하는 변명은 무책임한 것이다. 변명 자체가 상대방을 화나게 만들고 또 하나의 불신이 싹트게 된다. 솔직하게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6. 환상
건강한 부부 관계는 상대방의 진짜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한다. 부인이 "천사"다, 자녀는 "천재"다는 착각은 상대방을 부담스럽게 만들고, 이 환상이 깨지는 순간부터 당사자는 고통에 빠지게 된다. 상대방의 단점도 당신이 사랑하는 배우자의 것이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는 필자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몇 가지 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오늘 자녀를 둔 부모가 생각해 볼 속담. "부부가 있은 후에야 자식도 있다."

- 99년 7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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