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으로 풀어본 정신 건강 (9) - 콩 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팥난다

전남의대 정신과 / 전남대학교병원 정신과 소아청소년 정신건강클리닉
최 영


유치원에 다니는 남자아이와 엄마, 아빠 세 사람이 진료실을 방문했다. 눈을 깜박거리거나 입을 씰룩거리고 손발을 움찔거리는 소위 틱 (☞틱장애) 때문에 걱정이 되어 정밀 검사를 하고 싶어서 왔단다.

틱과 연관된 다른 증상으로 강박증이나 집중력 장애 등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대화가 있던 끝에 아빠가 진지하게 질문했다. 질문의 요지는... 아이가 아빠를 닮아서 지나치게 꼼꼼한데... 자신의 성격을 닮지 않도록 지도하는 방법이 없겠냐는 것이다. 자신의 지나치게 깔끔하고 완벽주의적인 성격 때문에 자신도 힘들 때가 있다는 것, 그래서 자신과 같은 성격을 가지면 아이의 인생이 고달플 것 같다..... 는 질문이었다.

면담 과정에서 특이했던 것은 아빠가 거의 대부분의 정보를 제공했던 것이다. 앉아있는 의자의 위치부터가 엄마 혼자 저쪽에 떨어져 앉고 아이 곁에 자리한 아빠가 혼자 콩치고 팥치고 한다 싶을 정도였다. 가정사에서도 매사를 꼼꼼하게 챙기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아이에 대해서 참 많이 알고 있는 아빠였다. 물론 훌륭한 아빠임에 분명하다. 사실 다른 부모들의 경우에는 엄마가 대부분 말을 하고 아빠가 보충하는 정도로 첫 면담이 진행되는데.... 아이가 몇 개월까지 우유를 먹었는지, 몇 살에 대소변을 가리기 시작했는지... 아이가 몇 반인지 모르는 아빠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흥미로왔던 것은 아빠가 작성한 아이의 성격에 대한 응답지였다. 나중에 이렇게 깔끔한 답지는 처음 보았다는 임상심리학자의 말을 들었을 정도로 수많은 작은 네모로 이루어진 답지에 아주 깔끔하게... 거의 같은 농도로... 그리고 네모 칸를 전혀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답을 작성했던 것이다. 가히 하나의 작품이었다. 그렇다. 이것이 아빠의 평소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에서 싫은 부분은 자녀가 닮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싶다. 눈이 작은 사람은 태어나는 아이가 눈이 컸으면.... 키가 작은 사람은 키 큰 아이를 바란다. 스스로가 소극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는 자녀가 사회성도 좋고 적극적이며 능동적이기를 바란다. 지나친 깔끔함 때문에 나름대로의 애로 사항을 경험해본 아빠로서는 자신과 다른 성격을 가지기를 원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바램일 수 있다.

유전에 대한 연구들을 통해서, 외향성과 내향성, 감수성, 활동성, 우울증, 정신병리적 행동, 불안과 강박관념, 수줍음, 공포심, 지도력 등의 성격적 특성도 유전이 된다는 증거가 밝혀졌다. 과잉활동하는 경향, 야뇨증, 손톱 물어뜯기, 심지어 자동차 멀미까지도 유전적인 경향이 있다고 한다.

사실 유전적인 경향은 현재의 우리로서는 어쩔 수가 없다. 유전자 조작과 같은 연구는 말 그대로 아직 연구 수준에 불과하다. 환경에서 주어지는, 혹은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겠지만 그 근본은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아니 무리하게 그 근본을 바꾸려는 시도는 오히려 부작용만 생겨나게 할 뿐이다.

필자가 그 아빠에게 해준 답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 아이의 특성을 받아들이고 부모의 바램이나 기대를 강요하지 말라는 요지였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콩을 심어놓고 팥을 기대하고 강요하는 부모는 없는가?를 자문해보기를 바란다. 콩을 심었다면 그 콩이 자라나서 알차고 풍성한 결실을 맺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콩이면 콩인대로..... 팥이면 팥인대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나서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 이 속담이 주는 교훈이다.

- 99년 10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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