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의 훔치는 행동 (도벽)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 전남대학교병원 정신과 소아청소년 정신건강클리닉
최 영


몇 달 전에 친척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의 친구의 초등학교 6학년된 손자가 있는데 학교 매점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들켜서 교장 선생님의 강요로 시내의 모 정신과에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건 훔치는 것도 정신과에 해당되느냐는 것, 그리고 그 곳에서 심리검사를 한다고 예약을 해놓았는데 무슨 검사비용이 그리 비싸냐는 질문을 대신 물어봐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대략 들어보니 이미 저학년 때부터 친구들 물건과 돈에 손을 대는 버릇(?)이 있어서 학년이 바뀔 무렵이면 담임교사간의 인수인계사항이 될 정도였는데 특별한 대책이 없이 지내다가 교실 밖에서 사건이 터져 버렸다는 것이다. 용돈을 적게 줘서 그런 것 같으니 병원까지 갈 필요가 뭐 있겠는가 라며 교장 선생님을 원망하더라고 한다. 하지만 필자는 마음 속으로 그 교장 선생님의 결단에 찬성표를 던졌다.

중3 남학생이 학교생활의 부적응과 학습문제로 외래진료를 수개월간 받고 있는 중이었다. 며칠 전에는 어머니가 심각한 표정으로 그 날 학교에서 전화를 받고 가보니 자신의 아들이 체육 시간 때문에 비어있는 1학년 교실에서 물건을 뒤지다가 마침 지나가던 선생님이 발견했다는 것이다. 얼 마전에도 아버지의 지갑에서 몇 만원을 훔쳤다고 한다.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히다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하소연을 했다. 평소 지능이 조금 낮고 성적이 바닥 권이어서 아이들에게 따돌림 받고 아버지와 교사의 관심에서도 멀어져 있었다. 이 훔치는 행동으로 인해 그 아이는 아버지와 교사의 관심(물론 부정적인 관심이지만...)을 한꺼번에 얻게 되었다.

몇 년 전에는 시내 개인병원 선생님으로부터 19세된 남자를 의뢰받았다. 아는 친척의 자제인데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으니 한번 정밀한 검사라도 받고 싶다고 하니 한번 봐 달라는 것이다. 일주일전 교도소에서 출소 후 집으로 오지 않고 제주도로 가서 방황하고 있는 것을 찾아서 데리고 왔다고 했다. 상습적인 절도로 16살부터 파출소를 들락거리더니 벌써 소위 별을 네 개나 달았다. 달래도 보고, 때려도 보고, 소년원과 교도소를 다녀와서도 변함이 없으니 걱정이란다. 훔치는 물건도 비싼 것도 아니요, 훔쳐서 친구들에게 나눠줘 버리고... 계획적인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냥 보고 훔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지 못한다고 환자는 매우 부끄러워하면서 이야기했다. 성장력을 청취해 보니 집중력이 짧고 산만하고 나대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가 있는 친구였다. 충동조절의 장애와 훔치는 행동이 관련된 것으로 보고 약물치료를 하면서 상담을 계속했다. 그 후 1년여 동안 공장에 취직해서 기숙사 생활을 했지만 물건을 훔치는 문제는 없었다. 첫 월급을 받았다는 말을 하면서 지었던 그 미소가 지금도 생생하다.

물건 훔치는 행동은 훔치기, 도벽, 도둑질, 절도 등 여러 가지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본 글에선 "훔치기"라는 말을 써보기로 한다. 가장 한글에 가깝다는 이유하나로 말이다.

# 어떤 경우에 "훔치기"로 볼 것인가?

훔치는 행동은 부모나 교사가 비교적 자주 접하는 문제 행동 중의 하나이다. 훔치는 행동 자체의 특성 상 은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훔쳤지?", "아니다", "솔직히 말해라", "정말 안 그랬다" 식으로 실갱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실용적인 정의(definition)는 자신의 소유가 아니거나, 가지고 있어서는 안되는 그 어떤 것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에 일단 훔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이 정의에 따르면, "빌린 것이다", "선물받은 것이다", "우연히 주은 것이다"라는 변명을 하더라도 훔친 것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

# 몇 가지 알려진 사실들

  • 남자아이의 10%, 여자아이의 2.5-5%에서 일어난다.
  • 사소한 물건을 훔치는 행동은 만 5-8세 사이에 가장 많이 일어나고 그 후로는 점차 줄어든다.
  • 만 10세 이후에 나타나는 훔치는 행동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표현으로서 즉각 전문가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
  • 대개는 거짓말과 동반된다.
  • 나중에 발생하는 학업부진, 청소년 비행, 성격장애에 선행해서 나타난다.
  • 청소년기에 생기는 훔치는 행동은 문란한 성행위, 식이장애, 약물 오남용과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 일 회에 국한된 훙치는 행동은 꼭 정신 병리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친구나 낯선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아이는 거의 대부분 가족으로부터 물건을 훔치는 행동이 과거에 있었거나 현재에도 있다.
  • 양육자가 보이는 훔치는 행동에 대한 태도에 따라 아이의 문제 행동이 계속되는 경우가 많다. 대개 지나치게 엄격한 경우나 무관심한 경우가 문제가 된다. 훔치는 행동을 통해서만 관심을 얻게되면 아이의 문제 행동은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적절한 감독의 결여, 혼란되고 난폭한 환경에서 학대나 방임 상태에 놓인 경우와 연관되어 나타나는 경우를 임상에서 많이 본다.

# 훔치는 행동의 이유는 무엇일까?

  •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들은 자신의 것이 아닌 물건을 가지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유치원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크레파스를 집에 가져오거나 남의 집에서 장난감을 들고 오는 경우가 있다. 이 나이에는 물건을 빌리는 것과 훔치는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 아이의 삶에서 무엇인가가 결핍되어 있는 경우에 발생한다. 물건 훔치기 자체가 부모의 사랑, 관심, 염려 등을 상징적으로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 부모가 무의식적으로 훔치는 행동을 부추긴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즐기는 것이다. 아이는 이런 것을 역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알아채고 훔치는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 부모나 친구의 범죄 행위와 많은 연관이 있다. 본받거나 존경하는 대상이 잘못 선택된 경우이다.
  •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남의 눈에 띄는 옷, 물건 등에 관심이 생긴다. 남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물건을 훔치기도 한다. 훔친 물건이 자존심을 한껏 세워주는 것이다. 친구들의 압력이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자신이 이렇게 대범하다, 통이 크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물건을 훔치는 경우도 있다.
  •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은 단순히 자신이 꼭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한 돈이 없어서 물건을 훔치기도 한다.
  • 일부 청소년의 경우 사회나 기존의 규칙을 시험해보는 수단으로서 물건을 훔친다. 이 경우 훔치는 행동은 기성세대를 대상으로 한 일종의 게임과도 같다. 이렇게 해도 들통 나지 않을 것이라고 자아도취에 빠진다.
  • 마음속의 공허감을 다스리는 수단으로 물건을 훔친다. 즉, 우울증의 증상으로서 물건을 훔치기도 하며, 학교생활에서 좋지 않은 성적이 압박감을 주어 훔치는 행동이 발생한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시험해보기 위해서, 박탈감, 버려진 느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미운 마음, 질투심, 경쟁심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훔칠 수도 있다.
  • 정신과적 질환과 연관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우울증,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품행장애, 약물남용, 경계선 인격장애, 식이장애, 등에서 흔히 훔치는 행동이 보인다. 지능이 낮은 경우, 학습장애, 뇌 손상이 있는 경우에도 많이 나타난다.

# 부모, 교사는 어떻게 할 것인가?

  • 넘어가서는 안된다. 이런 행동을 무시하거나 사소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더 큰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명심한다.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 행동하기 전에 자신의 감정을 잘 살펴보자. 처음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지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도 그렇겠지만 일단 침착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이의 문제 행동을 부모나 교사 자신의 실패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자제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나름대로 아이의 행동의 원인을 먼저 머리 속에 그려본다.
  • 아이의 설명을 들어본다. 화를 내고 비난을 먼저 하는 것은 거짓말과 변명을 불러올 뿐이다.
  • 남의 것을 들고 오는 것은 나쁘다는 명백한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아이의 존엄성을 존중해주는 태도를 취한다. 최소한의 체면은 살려줄 필요가 있다. 자신이 부모로서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 그러나 물건을 훔치는 행동은 절대로 해서는 안될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을 말해주어야 한다.
  • 친구 집에서 그 물건을 들고 왔다면 아이와 같이 가서 돌려주고 가게에서 물건을 들고 왔다면 같이 가서 값을 치른다. 사과를 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 잘못을 고백했거나 물건을 돌려주고 난 후에는 부끄럽고 힘든 일을 마친 자녀의 노력을 칭찬해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이번 일은 잊혀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 자녀에게 "도둑". "도둑놈"이라는 꼬리표를 붙이지 말아라. 당신의 자녀는 다음에 그 말대로 행동을 해 버릴 수도 있다.
  • 용돈이 부족하고 좋은 옷을 입고 싶어서 그랬다면, 또래에 비해 용돈이 어떤지를 진지하게 다시 고려해본다. 정 추가적인 돈이 필요하다면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서 스스로 돈을 벌어보는 경험을 하면서 책임감을 키워주는 것도 방법이다.
  • 당신이 아이의 도덕적 잣대가 됨을 명심하라. 자신이 혹시 사소한 물건이라도 훔치는 행동이 있었는가를 생각해본다. 당신이 직장에서 물건을 몰래 가져다 쓰거나 가게에서 점원의 잘못으로 많이 거슬러진 돈을 주머니에 말없이 넣는 행동은 아이에게 또 하나의 도덕 학습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 사후 관리가 중요하다.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아이를 관찰한다. 감시하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용돈관리, 시간관리, 물건관리를 세심하게 도와주고 하나하나 주의깊게 체크한다.

# 예방하는 방법

  • 가치관을 심어준다. 정직함, 남의 물건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남과 나누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평소에 가르치는 것이다. 부모도 자녀의 물건을 허락없이 사용해서는 안된다.
  • 가족사이의 가까운 관계를 유지한다. 따뜻한 부모-자녀 관계를 통해서 아이들은 당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평소에 용돈 관리를 잘 해준다. 세심하게 필요한 물건이 없는지, 혹은 물건을 무슨 돈으로 사는 것인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부모의 구두 닦기, 청소하기 등이나 아르바이트를 통하여 노력해서 버는 경험을 하게 도와주는 것도 필요하다.
  • 지도, 감독을 잘 한다. 자녀의 일상적인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잘 아는 부모, 그리고 놀고 즐기는 활동을 격려해주는 부모 아래서 문제행동이 발생하는 것은 흔하지 않다.
  • 평소에 물건을 빌리고 돌려주는 규칙을 명확하게 가르쳐준다. 자신의 집안 물건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것에 대한 규칙도 만들어준다.
  • 유혹을 미리 줄여준다. 부모의 지갑, 집안의 현금, 저금통, 금고 등의 관리를 확실하게 해두는 것이 좋다.

(이 자료를 개인적인 학습이외의 용도로 사용하시려면 사전 동의를 받으셔야 합니다. e-mail: childpsy@drchoi.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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